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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민들레의 영토에서 시와 사랑을 꽃피우는 수녀 시인
kklist21 | 추천 (0) | 조회 (625)

2010-10-10 00:44

수녀 시인 이해인 님

민들레의 영토"에서 날아드는 나즈막한 혼의 노래는 하늘, 구름, 별, 바다, 풀 한포기, 꽃 한송이, 몽땅연필과 함께 우리가 잊었던 것들을 되살려 놓는다.
주전자에 물이 끓는 모습이나 단추를 꿰매는 등 사소한 일조차 사랑의 힘을 기르고, 영혼을 반짝반짝 닦아 그 혼의 노래를 세상을 향해 날려보내는 수녀 시인 이해인 님.
바다가 가까운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좋은생각에 실린 글을 수녀원 식구들과 함께 종종 읽곤 한다며, 귀한 시간을 내주셨다.
“제 생활에서 시는 기도입니다. 저는 작가 라기보다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세상에 시를 날려보내는 사람일 뿐입니다.”
네 권의 시집 "민들레의 영토"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과 동시집 "엄마와 분꽃" 기도시집 "사계절의 기도" 수필집 "두레박" "꽃삽"까지 모두 8권의 책을 낸 후에 2백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수녀님의 첫 얘기는 너무도 겸손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시인이라기보다 시의 마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옷을 입고 나들이하기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독자들과 친지, 자주 드나드는 문구사나 도장집, 구두 수선방 아저씨에게까지 편지나 카드를 전하며 색다른 즐거움을 나눠주는 걸 보면.
“많은 분들이 편지를 통해 제게 글을 보내 오는데, 되도록 답하려고 노력하죠. 수인이나 군인, 어린아이들에게는 꼭 답장을 하구요. 저와의 대화를 통해 삶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될 때는 정말 보람을 느껴요. 그것도 내게 맡겨진 또 하나의 소명이겠죠.”
편지나 엽서와 함께 작은 선물을 나누는 것도 좋아하는 이해인 수녀님은 중년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조가비나 말린 꽃잎을 모아두는 취미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수줍은 듯 웃는다.
“간혹 제 글이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어요. 의외로 명랑한 모습에 놀랐다는 분들이 많아요. 늘 수녀원에서 생활하니까 언제나 진지하고 엄숙하리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나 수녀원의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저의 일상은 더 이상 유명인사의 모습이 아니예요. 제가 따로 맡고 있는 소임도 충실히 해야 하고, 오히려 더 작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냅니다.”
아침 미사와 낮 12시, 오후 6시, 저녁 8시에 있는 기도시간 외에 그는 맡은 소임인 사무처리, 문서정리 등을 해야 한다.
“우리 수녀원 뒤로는 황령산이 있고 앞으로는 광안리 바다예요.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게 너무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쳐져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해요. 그래서 황령산 개발 문제가 나왔을 때 수도자들이 서명을 하기도 했어요. 또 얼마 전에는 산불이 났는데 우리 수녀님들도 작업복을 입고 가서 열심히 불을 껐죠.”
수도자는 기도 속에서 늘 세상과 만나고, 또 이 시대의 모든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해인 수녀님은 45년 해방되던 해에 어머니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고향인 인천과 서울에서 자라났다. 얌전한 새침떼기 소녀였던 그는 신앙이 깊은 가정 분위기에서 문학을 사랑하며 자랐다. 많은 꿈을 젖히고 수도자의 길을 택한 것은 만인의 연인이 되고 싶었던 그로서는 자연스런 일이었다.
64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들어간 뒤 줄곧 수도자로 시인으로 살면서 필리핀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서강대 종교대학원에서 종교학을 공부했다. 수련 수녀시절부터 잡지 카톨릭소년을 통해 시를 발표한 수녀님은, 20년 전에 첫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내면서 더욱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이 시집을 읽고 어떤 농촌총각은 꽃씨를 보내달라고 했으며, 또 어떤 이는 수녀가 되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왔다.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그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요즘은 생활성서에 작은 명상이라는 칼럼을 쓰고, 수필을 주로 하는 잡지나 문예지에 가끔 산문을 쓸뿐, 시는 거의 못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쓸 수 있게 되겠지요.”
이해인 수녀님의 다섯번째 시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에, 여느 작가들과 달리 정식으로 글쓰는 시간은 따로 없고 자투리 시간에 글을 쓴다는 말로 답한다. 게다가 이해인 님은 단어 하나하나를 아껴, 잔잔한 일상 속에서 향기가 될 때까지 구르다가 빚어내는 분이 아닌가. 3년이 걸려 완성된 "석류꽃"이라는 시도 있으니….
“올해 첫 구절 생각하다가 또 석류꽃잎이 핀 걸 보면서 두번째 구절 쓰고 그렇게 힘들게 썼어요. 시는 체험의 열매이니까요.”
그런 아픔 속에서 어렵게 만들어진 단어와 문장이기에 글을 읽는 이는 쉽게 그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보너스를 받게 되는 셈이다. 아쉬운 마음을 누르며 끝으로 "좋은생각"독자들에게 들려주고픈 얘기를 청했다.
“윤동주 님의 서시의 내용처럼 단순하고 맑고 순결하게 살아가도록 애쓰시길 바랍니다. 또 시를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삶 안에서 열매맺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아픔도 따르죠. 맑은 삶에 도달하려면 때론 싸움도 필요하듯이 말입니다. 너무 볼 게 많고 들을 게 많은 사회에 살다보면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 부족한데, 그런 시간을 자주 갖길 바랍니다.”
좋아하는 유행가를 부르듯이 나의 애송시를 자연스레 나누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이해인 수녀님. 그는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마음을 갈고 닦는 아름다운 의무를 일깨워 주는 시인으로 남으리라.


필자 : 조선혜님 기자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6년 0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