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 추천 (0) | 조회 (467)
2010-10-12 19:37
탤런트 최불암 님
"이런 귀한 지면에 저를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17년 째 어김없이 안방을 찾아들어 사람사는 참 맛을 전하는 드라마 "전원일기"의 터줏대감 최불암 님(56세). 변함없는 넉넉한 웃음과 함께 건네는 그의 첫인사가 인상적이다.
그를 만난 곳은 여의도 쌍용빌딩 지하에 있는 3백홀. 그는 요즘 방송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낸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일인데,"여의도 예술문화회관"이라는 지역 문화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문화공간이죠.”
여의도는 국회의사당에 방송국이 3개, 나라 안의 온갖 금융기관이 밀집되어 있는 문명의 메카라고 불리는 곳이지만, 정작 문화적인 면에서는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곳. 그런 여의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이나 직장인들을 위해 영화, 연극, 전시, 이야기 마당 등 다양하고 알찬 문화 프로그램을 상설적으로 운영해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이 바로 "여의도 예술문화회관"이다.
그는 이곳에서 이사장 직을 맡고 있다. 하지만 실제 담당하는 일은 일선에서 뛰는 기획자의 그것과 다름없는듯 하다. 다음 작업을 함께 하게 될 작가와 전화를 주고받고, 스텝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리는 분주한 모습이 일면 낯설기까지 하다. 허름한 점퍼에 구김잡힌 바지차림의 김회장 모습에 너무 익숙한 때문일까.
하지만 "허허허~" 특유의 호탕한 웃음으로 이내 그의 향기를 되찾는다.
“저의 관심사는 언제나 문화죠. 문화는 사회적으로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필수적인 것 아니겠어요? 문화는 모든 흐트러진 것을 추스려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죠. 그런데, 문화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와 연결돼 있어요. 창의적 교육, 인성교육이 되어야 좋은 문화가 꽃필 수 있습니다.”
지금하고 있는 일이나 방송인으로서의 막대한 역할,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될 당시 약속한 대로 열심히 문체위, 교육위 활동을 했던 지난 일, 그 모든 것이 그의 평소 신념 때문에 가능한 일인 듯 싶다.
“모든 일에 후회는 없어요. 아직은 몸으로 열심히 뛸 때잖아요. 연기 활동에 충실하면서 지역문화운동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지난 해 TV를 보던 모든 사람들은 가장이 없는 김회장댁, 어른이 없는 양촌리 풍경을 못내 아쉬워 했다. 이제 그는 다시 대한민국 모든 안방에 든든한 가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존경받는 방송인의 역할에 언제나 무게를 느끼고 산다고 했다. 최근에 드라마 "미망"에서 한국인상을 정립한다는 심정으로 개성상인 역할에 혼신을 다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한국인상을 정립하는 것이 제가 연기자로서 저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요즘같은 부권상실 시대에 좋은 아버지 상으로 꼽힌다지요. 개인적으로 정말 보람있고, 영광스런 일이에요. 앞으로도 늘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말대로 최선을 다했다. 정의감과 인간미 넘치는 수사반장으로, 든든한 어른 양촌리 김회장으로, 가난한 소작인의 아들에서 거상이 된 개성 상인으로.
“우리 나이대의 사람들이 의례 그랬듯이 저도 청소년기에 서부영화를 많이 보고 자랐어요. 거기에는 늘 정의로운 인간, 진취적인 삶이 그려져 있었죠. 그 영화들이 지금의 미국을 만드는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었잖아요? 그때부터 일거예요. 나도 뭔가 그런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죠.
처음 그가 걷고자 했던 길은 연출가였다. 그런데, 배우들에게 노역을 지시 하다보니, 차라리 그가 맡는 것이 좋겠다는 주위 권유가 빗발쳤고 그때부터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졸업 후 몇년간 국립극단 단원을 지냈으며, 67년 KBS 탤런트 생활을 시작으로 방송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24~5세부터 그는 노역만 주로 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청년기 없이 노년기로 바로 가는 느낌이 들 정도란다.
90년대 초 대 유행한 최불암 시리즈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웃는 가운데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고, 세태의 흐름에 대한 관심을 갖게한 데 도움이 되었다면 좋은 일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점점 멀어지고 오히려 창피하게 생각하는 요즘 풍토에 대한 안타까움도 크다.
“방송의 영향도 커요. 특히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송이 되어야 하는데……. 거기에 제가 할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해야지요.”
"아무리 즐거운 일도 너무 빠지지 말고, 슬퍼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덤덤한 마음을 갖는 것. 항상 멀리 내다보고 생활 하는 것"이 삶의 신조라는 최불암.
“좋은 생각을 하면 행복을 얻게 되지요. 그런데, 그게 자기 혼자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돼요. 내 가족, 이웃을 생각하며 같이 해야죠. 그러려면 먼저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든든하고 위엄있는 한국의 아버지로, 웃어른들에게는 효심을 다하는 한국의 아들로, 사람 사는 따뜻한 정을 전해주는 이웃으로 살아온 최불암 님이 남긴 "좋은생각" 독자들과 함께 하고싶은 얘기이다.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7년 0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