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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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07:48
가수 김창완 님
스튜디오 밖에서 창 너머로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새삼 정답다. 점퍼 차림에 구김 잡힌 바지, 이젠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 한 미소와 아무렇게나 넘겨 빗은 머리. 마이크 앞에 앉아 청취자의 편지를 읽고 있는 그는 벌써 사연을 적어 보낸 이의 곁으로 다가가 앉은 듯하다.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눈빛이 그걸 말해 준다.
"아니 벌써" "가지 마오" "청춘" "회상"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찻잔" "빨간 풍선" "산할아버지" "개구쟁이" "꼬마야" "고등어"….
제목만 들어도 편안함과 함께 추억 속으로 빠져 들게 만드는 그런 노래들을 지어 부른 그룹 "산울림"의 맏형, 가수 김창완 님.
지난 3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일상의 통과의례처럼 "김창완의 FM 골든디스크"를 진행해 오면서 그는 우리와 더욱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손수 쓴 대사로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특유의 꾸밈없는 말투로 평범한 사람들의 사연을 전하고, 추억 속의 선율을 세상 속으로 흘려 보내면서 그는 어느새 방송인으로서도 프로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이처럼 가수, 방송인, 배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만능의 재주를 마음껏 발휘하면서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아 온 그와는 달리, 산울림의 나머지 두 동생은 오랫동안 각자 평범한 사회인으로 생활해 왔다. 그런 지 벌써 14년. 이미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그들 삼형제가 최근에 "무지개"라는 이름을 단, 열세 번째 앨범을 내고 다시 활동을 시작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시 모여 음악을 하고 싶다는 삼형제의 자연스런 요구에서 시작됐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1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 준 분들, 우리를 다시 모일 수 있게 한 주위 환경에 감사하게 돼요.”
그들의 재활동 선언은 우선, 지난날 그들의 자유 분방한 음악에 환호했던 청장년층들에게 추억 속으로 젖어 드는 여유와 새로운 용기를 주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명성을 깔고 시작하는 활동은 피하고 싶어요. 산울림을 잘 모르는 십대들도 듣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일까. 산울림의 새 음반은 14년 전의 "산울림"보다 더 강력한 록 사운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메추리로 전등불을 타자/김치로 옷을 해입자" 이렇게 시작되는 새 노래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여전히 실험성과 창의성이 강하게 엿보이는 음악을 추구한다. 77년 "산울림" 데뷔로 시작된 그의 음악 생활은 올해로 만 20년. 그 속에서 그가 가장 많이 쓴 말이 꿈과 젊음이었다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마흔넷. 중년인 나이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의 십대들과 함께 자유와 순수를 얘기하고, 음악을 통해 젊은이들이야말로 인류의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싶어하는 사람, 김창완 님.
“음악도 그렇고, 연기나 방송도 그렇고 특별히 꾸며서 하는 건 제게 안 어울려요.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모든 일을 대하죠. 장난하는 것도 좋아하고 부담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농담과 가벼움, 편안한 소시민의 표정이 잘 어울리는 그에게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풋풋함과 따뜻함, 또는 기발함이 살아 있는 "산울림"의 노랫말들이 즐거움과 동시에 어떤 무게를 던져 주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매일 라디오 방송을 해야 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드라마 촬영이 있고, 음악하고 남는 시간에는 글도 쓰고…. 항상 바쁘네요. 앞으로의 계획이요? 꼭 이렇게 하겠다 하고 목표를 세워 거기에 끼워 맞춰 사는 편이 아니라서….”
그의 앞에는 늘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콘서트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또한 14년 만에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만큼 한껏 욕심을 낼 만도 한데, 이제껏 지내 온 대로 자연스럽게 꾸준히 활동할 생각이란다. 얼마 전에 있은 새 앨범 발표 기념 콘서트 이외에 그가 세워 둔 큰 계획이라면 오는 6월에 있을 "산울림" 지방 콘서트를 들 수 있다.
“우리에게 권태로움과 지루함의 상징 같은 일상이야말로, 뒤바꿔 보면 수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일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회가 있을 수 없잖아요. 일상은 변화를 꿈꾸게 만드는 아주 귀중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좋은생각」 독자들과 함께하고 싶은 얘기라면서 그는 평소에 생각을 들려주었다.
비록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그에게서는 꾸밈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그는 이름난 가수이기 전에 "인간의 순수"를 한껏 느끼게 하는 지혜로운 우리의 이웃이었다.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7년 0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