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lis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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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6 16:19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어 우리 돈 수천억 원을 아껴 준 사람. 해마다 최고의 정보 인물로 꼽히는 사람. 천신만고 끝에 개발한 컴퓨터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을 무료로 공개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고스란히 포기한 사람. 초등학교 학생들한테 온 편지까지도 꼬박꼬박 답장해 주는 사람….
컴퓨터 의사 안철수 님. 그는 누구도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많은 일을 해놓고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를 만큼 계산속이 없다. 그저 성실하기만 한 그를 보고 사람들은 "별난 컴퓨터 의사"라 부른다.
“가만 보면요, 사회란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도록 돼 있어요. 자동차 한 대만 봐도 그렇잖아요. 여러 사람의 노력과 지식이 합해서 한 대의 자동차가 완성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군의관 3년 빼고 지금까지 쭉 공부만 하며 살아왔어요.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했을 때도 학생이었죠. 그 동안 늘 받기만 하고 살다가, 드디어 나도 무언가 사회에 공헌할 게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백신 프로그램을 10년째 무료로 보급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런 원칙을 계속 지켜 나갈 계획입니다.”
그는 지금도 물론 학생이다. 인터넷을 통해 "안철수 컴퓨터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매일 연락을 취하며 연구소 일을 해나가는 한편,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응용공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학위 논문이 곧 마감되기 때문에 이틀에 하루는 밤을 새면서 공부해야 한다. 알려진 대로 그는 서울 의대를 졸업하고 의학 석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줄곧 공부만 해왔다. 26년째 그가 학생으로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좋고, 또 배울 때는 뭐든지 기초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어요. 컴퓨터 분야는 순전히 독학이었죠. 컴퓨터 역시 기초부터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응용공학을 다시 공부하게 된 겁니다.”
그는 앞으로 의학과 컴퓨터 공학이 만나는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돌아보면 공부한 기억밖에 없고, 나이 서른여섯에 숙제하느라 며칠씩 밤새는 일이 때로는 억울한 생각도 들지만.
그가 컴퓨터를 처음 만난 것은 서울대 의대 다니던 시절이었다. 친구 하숙방에서 우연히 애플 컴퓨터를 보고는 그 맛에 깊이 빠져 든 것이다. 자신의 컴퓨터를 직접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일년을 조금 넘긴 뒤다. 컴퓨터에 매료된 이 의대생은 컴퓨터와 관련된 외국 서적은 모조리 뒤적이며 컴퓨터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미래가 컴퓨터와 관련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88년에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게 처음 생겼는데, 지금은 9천 종을 헤아리지만 그때는 단 한 종류였죠. 그런데 아무도 손을 못 쓰고 속수무책으로 퍼져 가는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백신 개발에 뛰어든 겁니다.”
하루가 서른여섯 시간 있는 것도 아니고, 의사의 그 바쁜 생활을 쪼개어 연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6년 동안 그는 휴가 한번 가지 않고 매일 새벽 세시부터 컴퓨터를 두드렸다. 마침내 그는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지면을 통해 컴퓨터와 관련된 수많은 글을 썼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 통신을 통해, 우편을 통해, 또한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통해 그는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고충을 일일이 들어주었다. 어느새 그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컴퓨터를 고치는 의사, 때론 인생 상담도 해주는 젊은이들의 친구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이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천재가 아니예요. 고등학교 때까진 부산에서 자랐는데 뭣 하나 뚜렷하게 잘하는 게 없었죠. 때로 천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눅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고, 실수가 있으면 반성하되 좌절은 하지 않았어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배우는 자세로 미래를 준비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나이 서른도 안된 안철수 님을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되도록 해주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뚜렷이 서 있는 건 아닙니다. 일단 학위를 받으면, 7월쯤 귀국해서 연구소 일에 좀더 신경을 쓰게 되겠죠. 앞으로 공부를 더 할지는 논문이 통과된 뒤에 생각해 보려구요.” 그는 공부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안철수 컴퓨터 연구소" 일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 퇴치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을 보면 왜 굳이 파괴하는 데 땀을 쏟는 걸까, 그 힘을 좀더 좋은 곳에 쓰면 자기 마음도 훨씬 기쁠텐데 싶은 거죠. 과학은 빠르게 발전해 가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기술에 노예처럼 끌려 가는 것 같아요.”
그는, 젊은이들이 컴퓨터를 대할 때 자기에게 필요한지는 생각지 않고 무조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선호하는 것, 과시하기 위해 첨단 기능만 고집하는 경향이 염려스럽다고 말한다. 스스로의 개성대로, 자기의 소신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겠느냐면서.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7년 0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