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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6 16:20
우리말 연구가 이오덕 님
“깨끗한 우리말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그렇게 어려운 한자말, 일본말들을 써 대는지, "우리 민족의 미래가 우려된다"고 하는 말이 있지요? "미래"를 "앞날"로 "우려"를 "걱정"으로 표현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평생을 우리말 바로 쓰기에 바쳐 온 이오덕 님(72세). 그는 누구를 만나든지 어지러워진 우리말 우리 글을 바로잡아 보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말을 담은 사전을 국어사전이라고 하는 것까지는 모른 척해 준다 하더라도 그 앞에 엣센스니, 그랜드니 하는 서양말까지 버젓이 붙고, 아이들의 소꿉놀이를 굳이 역할놀이로 바꿔 부르는 어른들… 문학작품, 신문기사, 심지어 아이들의 말과 글까지도 바른 것보다 잘못된 것을 찾는 게 더 빠른 것이 우리네 실정이다.
“가만히 보면, 배운 사람들이 우리말을 망치는 데 앞장서요. 말이나 글이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목적이 되니 그런 일이 생깁니다. 방 안에서 내내 글만 쓰는 사람들이 써낸 글, 유식하게 보이려고 어렵게 쓴 글을 좋은 글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지요.”
생활 속에서 사무친 것들을 쏟아 내는 보통 사람들의 글이 대접받는 사회, 온 국민이 자기 표현의 기쁨을 누리면서 글을 통해 자신을 가꿔 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늘 소망해 온 사람, 이오덕 님.
그래서일까. 이미 그는 오래 전에 등단한 아동문학가이자 수필가이지만, 자기 글을 쓰는 일은 오히려 뒷전이고, 어린이와 어른들을 위한 생활 글쓰기 교육에 더 많은 정열을 쏟아 붓는 듯하다.
“거친 말과 글은 세상을 더 메마른 곳으로 만들지요. 대단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흔히 "그것 참 물건이네" 그래요. 말이 이래서야 사람이 사람 대접받는 세상이 되겠습니까. 말이나 글을 바로잡는 일은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것이며, 민족의 생명을 이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글쓰기 연구회 활동과 강연, 우리말에 대한 연구, 글을 쓰고 책을 펴 내는 일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일하는 아이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참교육으로 가는 길」 「우리 글 바로 쓰기」 「무엇을 어떻게 쓸까」 「어린이를 살리는 글쓰기」 등 여러 권의 책을 꾸준히 펴내 우리 글을 바로 쓰려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었다.
“지난 86년 퇴직했으니까, 44년 동안 선생 노릇을 한 셈이지요. 돌아보면 볼수록 교육만큼 중요한 게 없지 싶어요. 정말 그래요. 다른 모든 것이 다 절망스런 사회라 할지라도 아이들이 바로 자라고 있다면 그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40여 년 간의 교사 생활. 이제 그에게는 이미 어른이 된 많은 제자들의 옛 글과 문집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길 데 없는 보물로 남아 있다. 아직 글자를 마음대로 쓰지 못해서 겨우 몇 줄 적어 놓은 것, 이름만 달랑 써 놓은 것도 있지만, 어른이 된 그 아이들은 아주 당당하게 자기 몫을 하면서 바르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어린이 교육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이오덕 님. 그가 생각하는 바른 교육이란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 아이 시절, 그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어린 시절이 희생되지 않는 것이지요. 무심코 어린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글쓰기를 시키는 선생님들도 있는데, 그게 다 어른들이 좋으려고 하는 것이지 싶어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그 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야 해요. 장래는 청년이 되어서 생각해도 늦지 않죠.”
그의 말대로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활개치며 마음껏 뛰어 놀기를 원한다.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곧 공부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배울 것이 많다며 그는 계속 설명을 이어 간다. 어떤 일이든지 제대로 된 일이라면 일 그 자체가 즐거워야 하고, 그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에 맞는 참된 것인데, 그런 이치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원리가 교육에도 적용되어야 하고, 세상 모든 일에 통해야 문제가 없어요. 어떤 이는 이상론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하기 쉬운 일이지요.”
놀이와 일이 하나 되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 그는 항상 농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저 꿈으로 남아 버렸고, 틈나는 대로 농사를 짓는 큰아들네로 가서 자연 속에 묻혀 지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며 웃는다.
“가끔 보면요. "일본말인지 우리말인지 모르고 썼어요" 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시골에서 책 안 읽고 학교 공부 안 한 분들이 이런 말을 쓸까, 아이들이 이런 말할까 한번 생각해 보면 돼요. 땀흘려 일하는 백성들이 말을 더 바르게 써요. 말에 관한 한 무식한 사람에게 배워야 해요. 이분들이 우리 선생입니다.”
우리말과 글을 바로 쓰려는 사람들의 영원한 스승으로, 언제나 우리 마음의 넉넉한 울타리로 남아 있는 이오덕 님. 그의 맑은 눈빛 속에서, 길다랗게 그늘을 드리운 커다란 나무 한그루를 보았다.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7년 0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