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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여성 운동에 바친 외길 인생
kklist21 | 추천 (0) | 조회 (390)

2010-12-11 16:23

여성신문 사장 이계경 님

잘못된 것이 있으면 늘 조목조목 따져서 바로잡으셨던 어머니, 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 주고 싶어서 무던히도 애쓰셨던 어머니, 시집간 딸한테 보내는 작은 김치 보따리 안에 언제나 따스한 편지를 함께 끼워 보내 오셨던 어머니….
지금은 안 계시지만 가슴 깊은 곳에 살아 계신 그 어머니의 모습을 이계경 사장(47세)은 그대로 닮았다. 그이가 여성 인권 문제에 평생을 걸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몸소 보여 주신 정의의 실천과 그 사랑 때문이었으리라.
이곳저곳에서 "잘살아 보세"란 새마을 노래가 힘차게 들려오던 1970년대에 이른바 깨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성 인권에 관한 문제가 조심스럽게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소위 여성 운동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그 즈음에, 그이는 여성 문제에 일찍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 문제를 처음 접한 것은 1974년에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여성 사회 교육을 받으면서였어요. 그때만 해도 "여성 운동" 하면 서구 여성들의 과격한 시위라든지 우리 생활과는 동떨어진 문제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제가 접한 여성 문제는 바로 우리 삶의 이야기였고, 여성의 잃어버린 자리를 찾고자 하는 매우 진지한 노력이었습니다.
그는 여성 문제를 위한 강연과 토론, 워크숍들을 찾아 다니는 동안 여성에 대한 바른 시각을 얻게 되었고, 여성을 위한 이 운동이 바로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제가 처음으로 시작한 일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중심으로 한 가족법 개정 운동이었어요. 먼저 제 후배들인 이화여대 학생들을 상대로 운동을 펼쳤는데,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더군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일종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가족법 개정을 위한 운동에 이어서 그는 대학 안의 "메이퀸 제도"를 폐지하는 운동을 벌이고, "여성학" 강좌의 강사로 뛰면서 뜻을 같이하는 젊은이들과 함께 "청년여성연합회"란 모임도 만들었다. 그리고 모교에서 시작한 그이의 여성 운동은 1980년대 들어 본격적인 사회 활동으로 전개된다. 매 맞는 아내를 위한 여성의 전화와 여성사회연구회를 창설하고 여성 카페와 여성 문고, 엄마 아빠의 육아 교육 프로그램 등 여성뿐 아니라 가정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들을 펼쳐 갔다.
무슨 일을 하든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늘 새로운 일을 꾸미기에 바쁜 이계경 사장, 워낙 일 만들기 좋아하는 그이를 일컬어 주위에서는 "일 저지르는 여자"라고 부른다. 그중에서도 그이가 가장 크게 저지른 일이라면 역시 여성신문의 창간일 것이다. 맨손으로 시작해 처음엔 무료로 나눠 주었던 여성신문은 1988년에 회사를 설립하면서 정식으로 창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알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었다고 그이는 고백한다.
“창간한 지 몇 달 만에 자본금이 다 떨어지고, 직원들은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자본이나 인력보다도 더 힘들었던 것은,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여성 문제에 관해 너무나 무관심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더 이상 회사의 앞날을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재산과 시간, 젊음과 열정, 그리고 사랑까지 그야말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것이다. 덕분에 여성신문은 한번의 결호도 내지 않고 올해로 9주년을 맞기에 이르렀다. 모두가 포기하라던 여성신문이 이제는 10만 명의 독자를 안고, 언론사로서 어엿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3월에 그이는 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하는 "올해의 여성 운동상"을 수상하는 큰 기쁨까지 얻게 되었다.
지난 23년 간, 오직 여성 운동을 위해서만 살아온 이계경 사장에게 있어서 진정한 위로와 상급은 바로 그의 가족들이라고 한다. 집안에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이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지 자못 궁금한데,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두 딸은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여성이 바로 엄마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단다. 옛날에 그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이는 딸들과 밤이 맞도록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때로 시간이 모자랄 때는 딸과 엄마 사이에 작은 편지들을 주고받는다고.
“만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양으로 엄마의 점수를 매긴다면 저는 당연히 빵점짜리 엄마일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아이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하느냐보다는 어떻게 지내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대학교수인 그이의 남편도 다름없다. 결혼하기 전에 이미 아내가 하는 일을 받아들였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 아름답게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그이의 또 하나의 작품인 "평등부부상"은 어쩌면 그들의 보기 좋은 부부생활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이는 여성신문 사장, 거기에만 안주할 사람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가 해야 하는 일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전업 주부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여성 인력 활용전, 사회 저변에 우리 문화를 심어 가는 사랑의 문화 봉사단 활동, 그리고 장애인을 위한 열린 음악회 등 이미 펼쳐 오고 있는 사업도 벅차지만, 올 가을에는 또 어떤 사업을 벌일지 사뭇 궁금하다.

필자 : 이윤주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7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