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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우리 시대를 건강하게 지키는 환경파수꾼
kklist21 | 추천 (0) | 조회 (385)

2010-12-11 16:24

환경운동연합 최열 사무총장

생명을 생명답게 살리는 자연, 그 자연을 지키기 위해 제 몸이 얼룩지고, 제 손이 부르트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속에는 언제나 한 사나이가 있다. 환경운동연합의 최열 사무총장이 바로 그이다.
“예전에 비하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죠. 그만큼 환경 문제의 심각함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의 환경이 얼마나 더 좋아졌나 하는 것은 여전히 별개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여전히 고단한 그의 일과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어지는 모임, 회의, 강연, 교육, 방송 등으로 빼곡한 하루 일정을 마치고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빨라야 밤 11시.
그는 벌써 20년 가까이 이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니, 청춘을 고스란히 환경운동에 바쳤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949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춘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다. 강원대학교 농화학과에 다니던 시절에는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가 강제 징집되었으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어 옥살이까지 하게 된다.
“6년형을 선고받았는데, 그때 200권이 넘는 책을 읽으면서 환경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죠.”
한 평도 채 안되는 감옥 속에서 그는 자신이 인생을 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누구도 가지 않은 길, 그러나 누군가의 피땀이 꼭 필요한 일에 평생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공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조차 드문 때의 일이었다.
그는 4년 만에 옥살이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다른 사건으로 6개월 만에 다시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되었고, 81년이 되어서야 사회에 복귀했다. 그리고 그는 오랫동안 꿈꿔 왔던 일을 행동으로 옮겼다. 82년 5월 혜화동에 우리 나라 최초의 환경단체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차린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야 나를 포함해 겨우 세 사람이었죠. 그러나 그 열정만큼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었어요. 우리는 무엇보다도 현장으로 뛰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론이나 주장은 공허할 뿐이니까요.”
이렇게 현장으로 뛰면서 그가 중심이 되어 밝혀 내고 해결한 반공해 환경운동 사례는 82년 안양천 오염실태 조사, 울산 지역 공해실태 조사, 낙동강 수돗물 사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강연을 다니고, 문제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현장 답사를 가고, 공해의 피해, 환경의 중요성을 목청껏 알리는 가운데, 연구소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공해문제연구소는 88년에 공해추방운동연합으로, 93년에 환경운동연합이라는 시민단체로 발전하게 된다.
그 동안 그가 했던 강연만 헤아려도 줄잡아 2천 8백회. 그리고 바쁜 일정을 쪼개 어린이들을 위한 「최열 아저씨의 우리 환경 이야기」를 비롯해, 「한국의 공해지도」 「살아 숨쉬는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 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또한 그는 환경을 위한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93년엔 제1회 시민인권상을, 94년엔 유엔에서 주는 환경인상인 "글로벌 500"을 수상하는 영광도 안았다.
“그전에는 주로 대학생, 시민단체나 종교단체에서 강연했는데, 요즘은 공무원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강연할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환경이 범국민적인 문제로 확산된 셈이죠. 현재 환경운동연합은 서울을 비롯해 31개 지역에 3만 8천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물론 자원 봉사자도 늘었다. 하지만 아직은 돕겠다는 사람보다 도와달라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는 아직 더 많은 사람의 작은 실천이 아쉽다.
그는 21세기를 눈 앞에 둔 이 시점에서 더 이상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는 좋은 경제도 좋은 삶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런데 환경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이나 어린이가 마음껏 자료와 정보를 얻고, 교육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환경센터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앞으로 환경센터를 만드는 일을 가장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300평 정도 되는 땅은 마련해 놨는데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계획이 있다면 환경운동가들이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연수원을 만들고 연구할 수 있는 재단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일반 시민들도 평생 환경보호라는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지요.”
언제나 환경에 관한 일이라면 청년 같은 의지를 불태우는 최열 님. 도대체 끝없는 그의 열정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인생에 있어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평생 한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야 개인에게도 의미가 있고, 사회에도 기여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발전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갈 때만이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그는 더불어 꿈꾸자고 말한다. 절약이 미덕인 세상, 작은 것이 아름다운 세상, 오래된 것이 인정받는 세상, 그 생명의 세상을.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7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