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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문학의 향기를 전하는 따뜻한 사람
kklist21 | 추천 (0) | 조회 (430)

2010-12-12 14:24

문학평론가 박동규 님

30년 넘게 문학 연구의 외길을 걸어오면서 문학평론가이자 수필가로 활약해 온 박동규 님. "TV 문학 산책" "SBS 라디오 문학산책" 등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와 더욱 친숙해진 그를 만났다.
“평론은 문학 연구의 남은 낙수 같은 기분으로 시작한 것이고, 방송은 전공인 문학 이외의 예술과 접할 기회가 많다 보니 시작하게 되었어요. 문화가 산책은 고급 예술 문화 전반을 이해하기 쉽게 안방에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8년여 동안 진행했지요.”
특유의 엷은 미소를 띄며 말문을 여는 그의 얼굴 위로 따스한 기운이 흐른다. 지금도 그는 교육방송의 "열린세상 열린교육", 평화방송의 "TV 노인대학"을 통해 일주일에 두 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듯하다.
그동안 펴낸 「현대한국소설의 성격연구」「현대시론」등의 문학이론서나,「별을 밟고 오는 영혼」「오늘, 당신이라 부를 수 있는 행복」등의 수필집을 통해서 그의 지난 발자취를 조금 더듬어 볼 수 있을 뿐. 그는 마치 오랜 시간 소리 없이 우리 곁을 지켜 온 무색무취의 공기처럼 그렇게 살아온 듯 하다.
그래서일까. 그가 부친 박목월 시인의 뜻을 이어받아 20여 년 간 우리 나라 유일의 시 전문 잡지「심상」을 만들어 왔고, 해마다 해변시인학교를 열어 온 사실 또한 아는 이가 적다.
“시 잡지「심상」은 25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아버님이 5년간 운영하시다가 작고하신 후로는 제가 맡아 운영하고 있지요.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시가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데, 왜 손해를 봐 가며 계속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당장 손해를 본다고 만들지 않으면, 시인들의 열정은 어디에다 담아 냅니까.”
시 잡지「심상」못지않게 그에게 소중한 것은 20년 전 구룡포에서 시작된 해변시인학교이다. 여름 휴가철에 놀러만 가지 말고 시인과 독자가 어울려 시도 읽고 솥 걸어 놓고 밥도 해먹으면서 마음도 씻고, 새로운 삶에 대한 눈뜸도 가져 보자는 소박한 뜻에서 시작한 해변시인학교는 이제 그 규모가 놀랄 만큼 커졌다. 최근에는 해마다 시인 150명을 포함해 약400명이 넘는 인원이 해변시인학교를 찾는다. 그래서 안면도에 조그마한 터전도 마련하였다고 한다.
“문학? 중학교 시절에 학생잡지에 투고해 당선되면서부터 관심이 깊어졌어요. 또, 어릴 때부터 이리저리 손들 뻗어도 책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으니…. 피난살이를 하던 그 좁은 방에도 책만 가득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남다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려진 대로 그는 시인 박목월 님의 4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시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일찍부터 문학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문학 연구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서울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모교에서만 29년째 후학들을 가르치는 "유명한 교수님" 이 되었다. 겉으로 드러난 이런 이력만 본다면 그의 얼굴처럼 편안한 인생 여정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난한 시인의 장남으로 겪어야만 했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고무신 한 켤레 살 형편이 못 되어 어머니 비단치마를 잘라 만든 신을 신고 다녔던 유년 시절, 전쟁통에는 미군 트럭을 닦아 주고 얻은 몇 푼의 돈으로 비지를 사서 겨우 저녁을 해결하고, 어머니와 함께 먼 길을 걸어다니며 봇짐장사를 하기도 했다.
또, 한때는 장거리 구석에서 콩을 튀겨 팔기도 했던 그런 힘겨운 성장기를 거치면서도 시인인 아버지의 정서적인 숨결만은 놓치지 않고 살아왔다. 그래서 그는 학자로서 문학인으로서의 명성에 갇히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작은 행복이나 사랑까지 보듬어 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질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그를 보면 가난을 뛰어넘은 자만이 지닌 지혜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올해 나이 쉰아홉 살. 이제 그의 일상도 많이 안정되어 있는 듯하다. 학교 일과 강의, 강의 후에는 시 전문지「심상」사무실에 들르고, 간간이 방송이나 초청 강연을 위해 시간을 내고, 저녁에는 제자들이나 문인들과 만난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더 높은 것, 더 가치로운 것을 건져 올리는 발돋움만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 그는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라는 책을 써내어 시인 박목월의 「문장의 기술」을 잇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자리잡았다. 또, 올해는 또 한편의 새로운 수필집을 준비하고 있다.
“문학에 대한 관심은 곧 삶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어떤 것이 인간다움이고 진실인지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진실한 삶에 대한 답을 주고, 자신을 성실하게 쳐다보는 눈을 길러 주지요.”
요즘 문학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상업화 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다는 박동규 님. 늘 다정한 눈빛으로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삶을 얘기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세월을 의미 있게 모으는 사람」이라는 그의 수필 제목이 자꾸 떠오른다.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8년 0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