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ID/패스
낙서 유머 성인유머 음악 PC 영화감상
게임 성지식 러브레터 요리 재태크 야문FAQ  
[퍼온글]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문화 예술인
kklist21 | 추천 (0) | 조회 (525)

2010-12-13 16:26

연극배우 손숙 님

아침에 그의 방송을 듣고 저녁에 그의 무대를 찾았다. 마이크 앞에 앉아 청취자의 사연을 읽으며 때론 눈물 짓고 함께 안타까워하던 그는 이제 간 곳이 없다.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그 무대 위에선 비틀린 사랑으로 서로를 파괴하는 여배우 자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거기에서 그는 다만 지적이고 차가운 언니 "블랜치 헛슨"일 뿐이다.
객석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막은 내리고… 분장실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방송과 무대를 오가는 사이, 친근함과 화려함이 묘하게 어울리는 독특한 분위기로 다가오는 손숙 님. 그에게선 도라지꽃 향기가 난다.
“MBC "여성시대"를 진행해 온 지도 벌써 구 년째 접어드는군요. 요즘 사람들은 가슴이 메마르고 현실적이라고 흔히들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날마다 수백 통의 편지 사연을 접하면서 우리 일상이 이렇게도 다양하고 애절하고 감동적인가 하고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개인적으로 사회 여러 분야에 대해 배우고, 사회 활동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구요. 아마 연극만 했다면 얻지 못했던 것들이겠지요.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라디오 방송뿐 아니라 텔레비전, 영화, 신문이나 잡지의 칼럼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해 왔다. 하지만 일년에 절반 가량은 무대 위에서 땀방울을 뿌리며 지낼 만큼, 연극 무대 또한 결코 소홀히 한 적이 없다. 특히 작년에는 중년 여성의 소외 문제를 다룬 일인극, "담배 피우는 여자"가 지방 순회 공연과 앙코르 공연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근 구 개월 간 연극 무대에 서야 했다.
“작품을 하는 시기에는 더 바쁜 게 사실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방송 준비하고 방송이 끝나면 원고를 쓰거나 형편에 따라 모임, 강연, 인터뷰를 하는 사이에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죠. 그리고 무대에 서고 밤이 되면 녹초가 됩니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누가 시켜서 하는 일들이라면 아마 그 사람과 원수가 되었을 것이라며 그가 웃는다. “항상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특히 사람에 대해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생활신조 또한 바쁜 일정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데 큰 힘이 되는 듯하다.
하지만 그 자신조차 평생 연극 배우의 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그는 194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양반 가문에서 자란 그가 배우의 길을 걷고자 했을 때 집안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중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는 다소 소극적인 성격을 지닌 모범생이었다. 그가 연극을 접하게 된 것은 풍문여고 삼학년 때의 일이다. 처음에는 학생회 일로 연극반을 지원했다가 뜻밖에도 연극 출연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63년 고려대 사학과에 입학하자마자, 개교 60주년 선후배 합동 공연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맞게 되면서 또 한 번 숨겨진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
“대학 삼학년 때 남편을 만나 결혼했죠. 그리고 이 년 뒤인 67년 동인극장에서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로 본격적인 연극 무대에 서게 됐어요.”
그는 함께 연극의 길을 걷던 남편 김성옥 씨의 아내로, 세 딸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한편, 그 동안 "홍당무" "파우스트" "산불" "신의 아그네스" "위기의 여자" 등 팔십여 편의 연극무대에 섰다. 그 사이에 그의 연극 인생은 올해로 삼십 년을 넘어섰다. 그의 무대 열정은 여러 번의 수상으로 이어졌고, 작년에는 연극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겁없이 무대에 서곤 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무대에 선다는 것이 점점 어렵게 느껴져요. 특히 작품을 올리는 첫 날은 말 못하게 떨리고 긴장되죠.”
그래서 늘 무대에 나서기 전에 관객들에게 최선의 연극을 보여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의 무대가 갈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감동을 주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화제는 다시 방송으로 돌아갔다.
“특히 요즘은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어려운 형편에 처한 이들의 사연이 많습니다. 그만큼 민감한 게 방송이죠. 고통을 분담하는 것도 좋지만 없는 사람들에게만 과하게 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땐 참 속상해요.”
그 또한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사정이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어머니의 필사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배우의 길을 택했고, 연극 배우와 결혼하면서 겪었던 또 한 번의 파란. 75년 경에는 남편의 사업 실패로 집이 차압당하고, 세 아이를 데리고 길거리로 나앉을 지경에까지 이르면서 정말 진한 세상살이를 배웠다.
“사람이 살다 보면 누가 무슨 일을 겪을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하지만 제 경험을 돌아보면 어떤 못 견딜 일에도 반드시 끝이 있게 마련이고, 절망의 벼랑 저편에는 불빛 하나가 꼭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면서, 또 한편으로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문화 예술인으로 자신의 몫을 다하는 사람, 손숙 님. 몇 해 전에 나온 그의 수필집 제목처럼 그는 "울며 웃으며 함께 살기"를 원하는 이들의 영원한 이웃으로 우리 곁에 남으리라.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8년 0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