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1997 © 야설의 문
낙서 | 유머 | 성인유머 | 음악 | PC | 영화감상 | |
게임 | 성지식 | 러브레터 | 요리 | 재태크 | 야문FAQ |
1970년대 초, 전방에서 군생활을 할 때였다. 초여름 꼭두새벽에 비상이 걸렸다. "대간첩 작전"으로 실탄까지 지급되었고, 어떤 장애물도 우회 없이 수색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당시 내가 수색을 맡은 경기도 연천 지역은 참외 집산지로 곳곳이 참외밭이었다.
아침이 밝아도 식사는 지급되지 않았고, 밤새 산야를 헤집고 다닌 탓에 배가 고파 그만 주인 허락도 없이 참외로 배를 채웠다. 오전 10시경 작전 상황이 종료되었다. 지친 걸음으로 집결 장소로 이동하는데 참외를 수확 중이던 주민 한 분이 나를 부르셨다. 그러더니 아들 바라보듯 기쁜 표정으로 크고 잘 익은 참외 두 개를 손수 골라 주셨다.
극구 사양했지만 성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미 참외로 실컷 배를 채웠지만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또 주민들에게 민폐 끼치지 말라는 부대의 지침 때문에 참외를 갖고 부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분께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어느 집 토방 위에 참외를 나란히 올려놓고 도망치듯 뛰어나왔다. 고된 훈련과 참외 서리, 마을 주민의 훈훈한 마음, 그래서 나의 군생활은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