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우리 부부의 인연은 끝이 났고 연약한 나에게 남편은 십자가를 지우고 그렇게 떠났다.
남편은 처자식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나 몰라라 하고 오로지 한 길 하늘나라로 떠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부의 인연이 아니었기에 우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고 우리 부부는 어느 사이 이별이 시작되어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남의 집 미용사로 전전하면서 눈물로 두 아이를 뒷바리해야 했다.
온갖 세파에 시달리면서 하루 잘 먹어야 두 끼.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한 끼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몇 년을 고생한 끝에 자그마한 미용실을 열게 되었다.
그동안의 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시집식구의 냉대와 무관심,
난방이 되지 않는 허술한 방에 전기요를 깔고 두 자녀들과 배를 움켜쥐고 잔뜩 웅크린 채 새우잠을 자야만 했던 지난 시절.
추위에 이빨이 덜덜 떨리고 코끝에 찬바람이 스치는 방안에서 나는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소리없는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이젠 작지만 내가 경영할 수 있고 우리 세 식구가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기에 난 고생도 마다않고 열심히 일했다.
아이들도 매우 좋아했다.
따뜻한 방에서 마음놓고 잠을 잘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니 난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몰랐고 입지 않았어도 춥지 않았다.
어떠한 고생도 헤쳐나가리라 굳게 마음 먹었다.
사랑스러운 자녀를 위해서 나는 새벽 5시30분에 가게 문을 열고
밤 12시가 지나서야 문을 닫으며 언제든지 손님이 문을 두드리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통장에는 돈이 점점 불어갔다.
그 돈 불어나는 재미로 나는 나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다.
정말 사는 게 뭔지.
산다는 것에 고통을 느끼며 난 남몰래 많이 울었다.
혼자 살아가는 여자의 슬픔과 고통을 어느 누가 알까.
벌써 두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니게 되어 교육비며 생활비 여기저기 돈 들어가는 일이 많아 나는 배를 더 움켜쥐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난 한 푼이라도 더 절약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고 두 자녀에게도 남들처럼 마음놓고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했다.
그리고 한 숨 돌렸다고 생각했을 때 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건강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해 9월부터 손목에 이상이 생겼다.
미용사의 생명이 손에 있는데 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손목이 퉁퉁 부었고 통증이 오고 고통스러워 미용일을 계속할 수가 없어 며칠을 버티다가 끝내 미용실 문을 닫고 말았다.
병은 한가지인데 약은 많았다.
병명은 류마티 관절염에 골다공증.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에 눈물이 앞을 가렸고 가슴이 답답했다.
미칠 것 같은 이 슬픔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한의원에서 침으로 쑥뜸을 하고 부산까지 가서 효험있다는 수지침을 맞았다.
이 병원 저 병원 신경과로 정형외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다했다.
밤마다 통증으로 고통스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 아픔과 괴로움을 호소했지만 대답없는 메아리만 내 가슴에 와 닿을 뿐….
울어도 울어도 눈물을 흘리며 이 고통을 견디어야만 했다.
때론 두 자녀를 부둥켜 안고 서로를 위로하고 달래며 한없이 울었다.
혼자 사는 것만 해도 서러운데 내 건강마저 허락하지 않으니 더욱 서러웠다.
고통이 심할수록 삶에 대한 애착이 사라지고 신경이 예민해져서 밤이면 불면증에 시달리고
하루가 일년같고 한 달이 십년이 된 것 같은 힘겨운 삶의 연속이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도 두 남매가 있기에 가슴이 더욱더 아팠고 고통이 날 괴롭혀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삶이란 모진 것일까.
어느덧 6개월이란 시간속에서 조금씩은 담담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여
전셋집이지만 나만의 공간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통과 슬픔을 딛고 일어설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하루하루가 살아가기 힘든 육신이지만 두 자녀가 엄마를 이해하고 위로해주고
집안일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주니 한편으로는 무척 기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육신을 바라보면 답답하지만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
건강이 회복되면 두 자녀를 위해서 내 자신을 위해서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련다.
두 자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며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이 슬픔을 딛고 일어서면 언젠가는 웃음이 있는 그날이 오겠지.
겨울이 지나면 새봄이 오듯이 나에게도 희망의 봄이 오겠지.
난 오늘도 푸시킨의 「삶」을 읊으면서 사랑하는 두 남매와 예전처럼 웃으며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다가오는 2월 8일은 사랑하는 딸아이의 중학교 졸업식이다.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한 점 미안하게 생각하며 딸아이의 졸업과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
“정효야, 졸업과 입학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