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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뒤로하고 국가의 부름을 받아 논산 훈련소에 입대한 것이 얼추 15년 전입니다. 동기들은 가족과 친구의 배웅을 받았지만 나는 사촌 형만이 내 까까머리를 보듬어 주었습니다.
중학교 때 봉토하면서 어머니를 가슴에 묻었으니,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다른 어머니들의 애틋한 눈빛은 부럽지 않았습니다. 다만 계속 발목을 잡는 것은 홀로되신 아버지 걱정이었습니다. 변변한 경운기 하나 없이 고된 농사일을 감당하고 조석까지 직접 챙겨야 하시기에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모든 소지품과 속옷까지 집으로 보낸 뒤 진짜 군인이 된다는 긴장감에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엄격한 내무반 생활과 힘든 훈련으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날마다 찾아왔지만 동고동락하는 동기들이 있기에 잘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4주간의 훈련이 끝나고 각 소대의 종합 성적이 발표되던 날, 우리 소대가 간발의 차이로 1등을 했습니다. 선물로 가족 면회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동기들은 들뜬 마음으로 집에 연락했습니다. 며칠 뒤 연병장 근처 넓은 공터에서 많은 가족이 재회의 기쁨을 나눴고, 부모님들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셨습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창 모내기로 바쁘실 아버지에게 일부러 연락하지 않은 터라 올 사람은 누나나 형뿐이었습니다. 어느덧 한두 시간이 지나고 아직 가족을 만나지 못한 동기들이 단상 옆에 모였습니다. 하사관님이 이름을 호명하자 몇몇 동기들은 부모님을 만났고, 늦게나마 형제들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원망이 커졌습니다. 다섯 명, 세 명…. 결국 나 혼자 남았습니다. 얼마나 야속하고 서럽던지…. 행군보다 힘들고 길게 느껴지던 면회 시간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하얀 자작나무 꽃가루가 흩날리는 길을 누군가 낯익은 종종걸음으로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확실했습니다. 논에서 일하다 경황없이 오신지라 아버지 옷소매엔 진흙이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손에 든 하얀 비닐봉지에서는 치킨 한 마리와 맥주 몇 병이 달그락거렸습니다. 순간 참았던 눈물이 줄줄 흘러 앞을 가렸지만 마음은 따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