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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싱싱한 물빛을 닮은 그 사람
바가지 | 추천 (0) | 조회 (391)

2011-01-18 14:47

 

라오스의 최남단,
그러니까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메콩의 장엄한 흙빛 강물이 태국과 경계를 나누며 라오스의 등뼈를 훑어 내리다
막 캄보디아로 발을 들여놓기 바로 전에, 시판돈Sipan Don이라는 곳이 있다.
생각해 보면 빡세Pakse에서 수도 비엔티안이나 고도古都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북쪽 길로 곧장 가지 않고
오토바이까지 렌트해 남쪽으로 내려선 것은 순전히 시판돈이라는 이름에 이끌려서였다.
라오스 말로 "시"가 숫자 "4"이고 "판"이 "천"이고 "돈"이 "섬"이니까, 시판돈이란 "4천섬"인 셈이었다.
4천 개의 섬이 강에 떠 있다 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바다도 아닌 강 위에 흩뿌려진 4천 개의 섬이라…….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고도 매력적이었는데,
아내와 나를 강력하게 이끈 것은 시판돈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느낌이었다.
그 언어에는 무언가가 "시작된 곳"이라는 어떤 시원적인 냄새가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4천 개의 섬 가운데 어느 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졌다.
라오스 사람들의 삶의 근원이 된 무엇과 만나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토바이를 싣고 돈뎃Don Det이라는 섬에 내렸을 때가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하늘은 파랬고 섬과 섬 사이로 뻗어나간 초콜릿 빛 강물이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는 하얀 구름이 피어올랐다.
원근법을 잘 살려 낸 어느 화가의 그림 속을 여행하고 있는 듯 아득한 기분이었다.
섬에는 도로가 없었다.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과 강 사이에 난 작은 오솔길이 나 있을 뿐이었는데,
그 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하자면 여행자들은 많은 편이었다.
그들은 해먹에 드러누워 책을 읽거나 대나무를 엮어 만든 레스토랑의 한쪽에서 "라오 비어"를 홀짝이고 있었다.
더러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윗몸을 드러내고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거나 돌아오고 있었다.
아내와 난 방갈로 모양의 게스트하우스들을 하나 둘 지나
가장 안쪽에 위치해서 가격도 가장 싼 게스트하우스에 짐만 던져두고 곧장 섬을 돌아보기 위해 나섰다.

어설프나마 문명의 이정표 노릇을 하던 식당이나 방갈로의 간판들이 사라지자 길이 더욱 좁아졌다.
그리고 섬사람들의 대나무집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대개 기둥이 되는 두 개의 통나무 다리를 흐르는 강물에 담구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메콩 강을 집 앞마당으로 둔 셈이었다.
그 앞마당에 벌거숭이 남자아이 둘이 수영을 하고, 엄마는 옆에서 빨래를,
아빠는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 수리를 하고 있었다.
여행자의 인사. 안녕.
그러자 벌거숭이 녀석들이 강물에서 뛰어나왔다.
쌍둥이였다.
너무 반갑게 달려오는 품새가…… 혹시, 포토, 달러, 라고 외치진 않을까…….
여행자는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녀석들은 영어 단어들 대신에 까르르르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들의 누이와 함께 우리 앞에서 웃고 있었다.
그리곤 손을 잡고는 집 안으로 이끄는데, 그곳에 아기가 동그란 대바구니에 담겨 흔들흔들 잠들어 있었다.
자기들의 예쁜 동생을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참 평화롭다는 생각.
고맙다는 생각.
그리고 조금은 미안하다는 생각.


아마도 이 섬에도 처음 여행자가 들고부터 많은 변화가 있어 왔을 것이다.
식당이 생기고 게스트하우스가 지어지고 고기잡이와 농사 이외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면서
이곳 사람들 사이에서도 직업과 경제력의 차이가 만들어졌을 테다.
그러면서 다른 세상을 꿈꾸며 이곳을 떠나는 젊음들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눈빛에는,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다니면서 많은 돈을 써 대며
섬의 변화를 가져오는 외국인 여행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있을 법도 하건만, 어떤 원망도 비굴함도 없었다.
이처럼 여행자가 많은 곳이면 영어 한두 마디 하는 것은 보통이고
영어를 익혀 새로운 삶의 통로를 개척하려는 열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곳은 달랐다.

왜일까.
어느 작가의 말처럼 그들에겐 욕망이 없어서일까.
그저 오늘 먹을 만큼만 일하고 강물에 기대어 생을 즐기면 그만이라는 그들 삶의 철학 때문일까.
집 앞마당을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평생 한 자리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그렇게 가족이 전부인 삶을 살아가다, 역시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는 그들의 삶.
생각할수록 이곳 라오 사람들의 삶은 단순하고도 느리고 평화롭다.

다시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손을 흔들어 주는 꼬맹이들을 뒤로하고 오솔길을 달렸다.
열서너 채의 집들이 모인 마을을 지나고 강물 속에서 더위를 식히는 물소들을 지났다.
그리고도 띄엄띄엄 메콩 강을 앞마당으로 둔 많은 대나무집들을 지났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몇 번 갈림길이 나왔고 간혹 이정표가 없었다.
다행히 매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거나 근처에서 대나무를 베고 있는 가족이 있었다.
“리피Li Phi 폭포로 가는 길은 어느 쪽이죠?”

그때마다 내 양손은 폭포수가 되어 땅으로 힘차게 흘러내려야 했고,
그래서인지 라오 사람들은 곧잘 말뜻을 알아듣고 길의 방향을 손가락으로 보여 줬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재밌다.
외국인들은 왜들 그곳에 가려고 기를 쓰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흠, 나도 그들의 마음을 안다.
원래 서울 사람들이 남산타워에 오르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별것 아닐지도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
그리하여 그 과정에서 길을 잃고, 어려움을 겪고, 또 사람을 만나고,
마침내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 말이다.
여행자에게 목적지 자체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리피 폭포는 장관이었다.
붉은 빛의 성난 물줄기가 이를 막아선 바위 덩어리들과 투쟁하며 쿨럭쿨럭 튀어 오르듯 흘러내렸다.
지금껏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이과수와 빅토리아와 나이아가라 폭포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게 될 것이 분명했다.
감히 다가설 수 없는 경이로움이 그곳에 있었다.
실제로도 섬사람들에게 "리피"란 "악귀를 막아 주는 방어막"의 뜻을 가지고 있다 했다.

그런데 그 아래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처음에는 무척 경악했던 것이,
그의 구릿빛 등짝이 물빛과 비슷해서 거센 강물을 버티고 서 있는 줄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보기만 해도 위태로운 바위 위에 서서 가위 모양의 긴 대나무로 만든 어망을 이용해
폭포수에 밀려 내려갈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나도 용기를 내어 바위 아래로 내려섰다.
물줄기는 천둥소리가 되어 흘러갔다.
나는 사진기 렌즈를 열고 그와 함께 기다렸다.
바위 덩어리들과 싸우는 성난 폭포수와 그 폭포수와 싸우는 물고기와,
또 구릿빛 등이 아름다운 그를, 이 모두를 다함께 사진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어망은 매번 빈손이었다.
간절한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그는 나를 향해 돌아보며 웃어 주었다.
그때 나는 그의 웃음이 메콩 강의 싱싱한 물빛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무리 관광객들이 몰려들어도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지켜갈 수 있는 비밀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김향미, 양학용님 여행작가

결혼 10년을 맞아, 배낭을 꾸려 47개국을 967일간 누볐다.
그 여정을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와 《여행자의 유혹》(공저)에 담았다.
지금은 여행작가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여행학교"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