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쇠러 오지 못할지라도 벌초 때는 꼭 와야 하는 게 제주의 오랜 풍습입니다. 처음 제주에 와서 놀랐던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제주의 "모둠벌초" 문화였습니다.
학원에서 강의를 할 때인데,
추석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학원이 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벌초하는 날이라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제주에서는 조상에 대한 예의가 극진하여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학원이 쉬는 것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아예 "모둠벌초"의 날이라고, "벌초 방학"을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학교에서 "모둠벌초" 방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가 바뀌면서 겨우 이해를 하기는 하였지만,
제주에서는 대개 음력 8월 1일을 "모둠벌초"의 날로 정하고,
그날에는 공무원들에게도 임시 휴무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날이 되면, 제주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서울이나 부산에 가 있는 출향인들도 모여듭니다.
그래서 "모둠벌초" 기간에는 비행기 표를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심지어는 일본에 가서 살고 있는 재일교포까지 "모둠벌초"를 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옵니다.
그렇게 전국이 아니라 세계에 흩어져 있는 친척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둠벌초"일이 다가오면 제주에 사는 사람들은 벌초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예 인사말이 “벌초 했수꽈?”로 바뀝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끼리도 인사가 그렇습니다.
아침에 만날 때엔 “벌초 했수꽈?” 하고 인사를 하고,
저녁에 헤어질 때는 “벌초 언제 하우꽈?” 하고 인사를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모둠벌초"인지라
객지가 나가 있는 친척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때가 "모둠벌초"를 할 때입니다.
모둠벌초는 8월 1일에 맞추어 하는 게 원칙이지만,
요즘에는 주말에 맞추어 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래서 보통 8월 1일을 전후한 일요일이 모둠벌초의 날로 정해집니다.
하지만 그도 어려운 사람들은 모둠벌초의 날을 더 당겨 잡기도 합니다.
육지에서처럼 양력 8월 어느 날로 날을 잡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추석보다 벌초를 더 중요시 여긴다고 해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나,
제사 지내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육지 사람들이 가족끼리 단출히 모여 제사를 것에 반해
제주에서는 친인척은 물론 마을 사람들까지도 제사 잔치를 함께했습니다.
또한 혈연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죽은 자와 가까이 지냈던 이들은 언제든지 제사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마치 생일잔치를 하는 것처럼 제사 잔치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어느 집의 제사가 되었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제사에 참석하기 어려운 이웃에게는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사 풍습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아서,
"제사 먹으러 간다."는 말을 흔하게 듣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저녁이나 먹자고 전화를 걸면,
“제사 먹으러 왔수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가까운 사람들의 제삿날을 기억하고,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 이곳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또 한 가지, 제주에서는 제사에 대한 책임이 장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를 형제들이 나누어 지내고, 때로는 번갈아 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설날에는 큰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추석에는 작은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라는 게 죽은 자들을 위한다기보다는 산 자들의 친목을 돕는 성격이 강합니다.
다른 어느 곳보다도 뿌리 의식이 강한 곳이 제주입니다.
제주 토박이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입도조"가 있습니다.
그 입도조를 중심에 둔 벌초 문화가 "모둠벌초"입니다.
흔히 4대조 묘까지 벌초를 하는 가족벌초와 그 윗대 조상의 묘를 벌초하는 모둠벌초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의 모둠벌초는 문중의 대표 격인 사람들이 날을 잡아 모여,
입도조의 무덤부터 벌초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흔히 "모둠벌초"라 함은 친인척이 모여 조상의 묘를 함께 벌초하는 것을 뜻합니다.
올해도 제주에서는 30곳이 넘는 학교에서 "벌초 방학"을 하였습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효" 사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산교육의 장으로써 그만한 기회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주에서의 벌초 문화는 여전히 살아 있는 풍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식께 안 한 건 놈이 모르고, 소분 안 한 건 놈이 숭 헌다.
(제사 안 지낸 것은 남이 모르고, 벌초 안 한 것은 남이 흉을 본다.)”는 제주의 속담이 있습니다.
그만큼 제주에서는 벌초를 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행여 벌초를 하지 않고 버려져 있는 묘소가 있으면,
"골총"이라 하였으며, 그런 묘소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설령 자손이 있더라도 벌초가 되어 있지 않으면, 같은 취급을 하였습니다.
자손이 벌초를 하지 않는 것을 자손이 끊긴 것과 같은 의미로 여긴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묘소를 마을 단위의 청년회나 각종 단체에서 찾아내어 벌초를 해 주기도 합니다.
산 자의 집이건, 죽은 자의 집이건 사람이 찾지 않으면 흉가가 됩니다.
벌초가 되었건 추석 성묘가 되었건, 살아 있는 사람의 발이 움직여야 모두가 삽니다.
추석날엔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대흠
1967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9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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