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진 님 (주)구띠에 커피 대표
중앙아메리카 남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
매년 11월이면 코스타리카의 한 해변에서는 10만 마리가 넘는 거북이들이 모여드는 장관이 펼쳐진다.
이미 수천 마일을 헤엄쳐 온 거북이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바다로부터 모래사장으로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수많은 거북이가 한꺼번에 움직이다 보니 서로 부딪히고 뒤집혀 다치고 죽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계속 행진한다.
모래사장 좋은 자리에 터를 잡고 알을 낳기 위해서.
코스타리카의 거북이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주)구띠에 커피의 박명진 대표.
“저희 회사는 절대 떼돈을 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적은 돈을 꾸준히, 오랫동안 버는 회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큰돈"은 자신의 회사와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대박"이나 "한 방"이니 하는 것에 끌리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을 고리타분하게 여길 수도 있다.
사실 박명진 님도 한때는 그랬다.
그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청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공장에 불이 났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은 그의 가정은 빚에 쪼들리기 시작했다.
가족 간에 불화도 생겼다.
마냥 공부만을 하고 있을 수 없었던 그는 꿈을 접고 집에 남은 돈을 모두 모아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노래방 기기 사업을 시작했는데
마침 전국적으로 노래방이 대히트를 치면서 그는 큰돈을 만지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성공한 젊은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세상이 달리 보이더군요.
전처럼 발로 뛰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더 이상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사업을 해서 더 큰돈을 벌어야지 하는 욕심에 회사 규모도 자꾸 늘려갔고
무리한 투자를 계속했습니다.” 그의 인생에 다시 굴곡이 찾아왔다.
사업이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 것이다.
또 하는 일마다 연거푸 망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번 큰돈은 정말 내 돈이 아니라는 것을,
인생의 성공은 요행이 아니라 땀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을요.”
마음을 고쳐먹고 덩치만 키워 놓은 회사를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 박명진 님은 원두커피 사업을 시작했다.
원두를 가공해 커피 전문점에 제공하는 일이다.
커피 전문점에서는 커피가 한 잔에 보통 3000~ 4000원 정도하지만,
재료가 되는 원두커피의 실제 원가는 약 700원이다.
그러니까 스타벅스나 커피 빈과 같이 원두커피를 파는 직영점까지 운영하지 않는 한,
원두커피를 가공해 파는 것만으로는 마진이 무척 적다.
예전 같았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사업이지만,
그는 이 일에 무려 7년 동안이나 매달려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유는 단 하나, 적은 돈이지만 땀 흘려 일하면 그만큼의 정직한 대가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원두커피는 생두를 볶아 만든다.
그런데 일단 볶으면 그때부터 산화가 되기 시작해 점점 고유의 향이 날아가고, 맛도 떨어진다.
박명진 님은 품질 좋은 원두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볶는 기술이나, 포장하는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허름한 공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직접 콜롬비아 커피생산자협회 일본지사에서 공부를 하고 원서와 씨름을 했다.
커피도 참 많이 마셨다. 하루 200잔 넘게 커피를 마시고 이틀 동안이나 잠을 못잔 적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이런 노력은 곧 특허를 받을 정도의 독자적인 제품 개발로 결실을 맺었고,
편의점에서 즉석원두커피 판매 1위,
힐튼이나 인터콘티넨탈과 같은 특급 호텔로의 납품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눈을 감고 맛을 본 다음 제품을 선택하는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국내 최고를 자부하는 제품을 만들게 됐다.
2003년 총 매출, 70억.
이제 결코 적게 번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매출이다.
하지만 이 70억이란 돈은 700원 원가의 커피를 발품으로 팔아 만든 돈이라는 그의 말에
작은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매일 차근차근 쌓아올린다는 생각으로 일합니다.
당장 큰 변화는 없지만 100년, 200년이 지난 후에는 달라질 회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고요.”
박명진 님이 꿈꾸는 미래를 위한 걸음은 마치 알을 낳기 위해 죽음까지 각오하고
모래사장에 오르는 저 먼 나라 한 바닷가의 거북이들의 위대한 행진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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