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정말 잊지 못할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곳은 내가 여상을 갓 졸업하고 취직한 호텔에서였습니다. 저는 호텔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석 달 먼저 입사한 그 친구와 한 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동갑내기라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술만 마셨다 하면 부모님 원망을 하는 친구였습니다.
지리산 골짜기가 고향인 친구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평생 맞고만 사셨습니다.
배우지 못한 부모님은 늘 이웃들의 웃음거리였고
친구는 그런 부모님이 못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몇 안 되는 형제들도 결혼해서 잘 살지 못하고 이혼을 하는 등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친구는 그것 때문에 늘 속상해했습니다.
저도 역시 가정환경이 좋지 못해 그 친구와 마음을 나누며 더욱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 년도 채 못되어 헤어졌습니다.
친구를 못본 지 몇 달 뒤인 어느 날, 그녀가 술에 잔뜩 취한 채 찾아왔습니다. “수연아! 사는게 우째 이렇노!” 친구는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간의 일을 얘기했습니다.
그동안 친구는 직장생활과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적금을 탔는데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하는 고민 끝에 부모님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부모님은 부모님이다"라는 생각으로 한약까지 지어 시골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집에 다다를 무렵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어 뛰어가 보았더니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대낮부터 취해서는 딸이 온다기에 마중을 나오다 교통사고를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셨습니다.
친구는 아버지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내가 그때 너한테 그렇게 말했어도 그게 아닌기라. 너도 알제?”
친구의 말은 기숙사 시절 부모님 원망을 내게 잔뜩 늘어놓은 것이 그저 넋두리에서 나온 것뿐이지
정말로 부모원망은 안했다는 뜻인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그 친구는 다시 소식이 없었습니다.
가끔가다가 "어디 술집에 다닌다더라" "누구와 동거한다더라" 하는 소문을 들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수연이가? 내다. 걱정 많이 했제?” 반가운 마음에 "어디냐" "만나자" 했지만 친구는 지금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다. 돈 좀 부쳐 주라 내가 니 아니면 어디다 부탁하겠노!”
그리고 내내 소식이 없다가 일 년이 지나서야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모습은 너무나 핼쓱해져 있었습니다. “수연아! 사는게 우째 이렇노!” 친구는 수년 전 내게 했던 말을 다시 했습니다.
이제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모든 걸 알아버리는 듯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친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몇 달을 방황하다가 "이러면 안되지" 싶어 직장을 다시 나갔다고 합니다.
자취생활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지만 회사 안에서 어떤 남자를 알게되어 결혼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큰 오빠가 어떻게 알고 왔는지 이틀이 멀다하고 회사로 찾아와서 돈을 달라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리고 단칸방인 자취방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는 술을 마시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친구의 애인은 점점 멀어져갔고 친구는 끝내 직장을 그만두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빠는 친구가 직장을 옮기는 곳마다 찾아 와서는 친구를 못살게 했습니다. 결혼한 언니들이 어려운 친정집은 나 몰라라 하고 아예 발길을 끊자
그것이 속상했던 그 오빠는 한 잔 두잔 술을 마시다가 결국 친구의 아버지처럼 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오빠는 어느 추운 겨울날 객사를 하고 뒤이어 어머니가 충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말을 하는 친구는 의외로 담담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던기라. 자, 내 빚지고는 못사는거 알제. 고맙데이.” 친구는 빌린 돈을 내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수연아!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안 있나!
몇 번이나 죽을라고 했지만 살면서 우째 이런 일만 있을라고 싶은게 무슨 미련이 많은지…
근데 니는 와 시집 안 가노?”
가슴 속 말을 다 털어놓은 친구는 그제사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내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울 일도 많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 만한기다.
난 그걸 꼭 믿는데이.
내 또 조만간에 소식줄게.” 그러면서 친구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 얼굴이 어찌나 밝던지….
어느새 5월이 되었습니다.
5월의 신부가 가장 아름답다며 여기저기 결혼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그중에 너무도 나를 놀라게 한 청첩장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축복으로-신부 안은영」
저는 혹시 잘못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습니다.
분명 "그래도 살아 볼만하다"며 환하게 웃던 바로 그 친구의 청첩장이었습니다.
5월의 햇살만큼 밝은 친구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두손모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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