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귀도를 처음 본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차귀도에 가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가 보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나를 태우고 차귀도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차귀도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표지판에는 분명 차귀도라고 적혀 있었지만,
우리가 닿은 곳은 자구내 포구였습니다.
차귀도에 간 것은 두 눈뿐이었습니다.
섬은 사람의 발로는 딛을 수 없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막 태어난 아이의 모습처럼 섬의 첫 인상은 "처음"이라는 단어에 걸맞아 보였습니다.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연잎을 구르는 새벽 첫 이슬처럼 또랑또랑한 눈빛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모든 죄가 들킬 것 같은 눈빛이었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들키고 싶은 눈빛이었습니다.
차귀도가 그러했습니다.
섬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습니다.
죽도와 와도가 있고,
노루의 두 귀와도 같은 큰여와 작은여도 있었습니다.
해무가 이는 날에는 선경인 듯 제 몸을 감추는 차귀도.
가지 못한 섬을 앞에 두고서 때로는 영영 가 보지 못할 섬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알지만 알 수 없는 어떤 실체를 생각했습니다.
오래 만지고 생각하였으나 여전히 알 수 없는 당신처럼,
멀리 있는 아름다움을 생각했습니다.
나중에야 섬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섬에 간다고 해서 섬을 알 수 있을까요?
불쑥 다가서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방법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섬과 나 사이에는 바다가 있고,
그 바다에는 파도가 쉴 날이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늘 그 파도 너머에 있습니다,
당신이 그러하듯.
결국 나는 섬이 좋아 섬 곁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섬에 가지는 않았습니다.
눈물로도 가지 못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눈물을 깔아 달팽이처럼 길을 걸었으나 가지 못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더 울어 내 눈물이 바다가 될 때까지 닿지 못할 섬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대는 섬으로 있고, 바다가 되지 못한 나는,
아주 작은 바다로 울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내 몸이 전부 녹아 바닷물이 된다면 만날 수 있을까요?
그대는 외따롭고 나는 무릅니다.
저물녘이면 차귀도를 보러 가는 게 나의 일과입니다.
그대를 생각하는 버릇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대에게 가지 않습니다.
사람의 인연은 작위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게 나의 믿음입니다.
나는 그저 바라보며,
섬 안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러다 짧은 시 한 편을 썼습니다.
먼 데 섬은 먹색이다
들어가면 꽃섬이다
제목을 "꽃섬"이라고 붙여 보았습니다.
멀리 있는 그대 안에는 내가 보지 못했던 수많은 꽃이 피어 있을 것입니다.
그대가 영영 멀리 있어도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돌아가지 못하고,
섬에 걸려 있지만,
그대는 그대의 아름다움으로 빛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차귀도에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제주도의 지맥이 황제가 날 땅이라 해서 중국에서 호종단을 보냈답니다.
그들은 제주의 혈맥을 끊고 다녔다지요.
하지만 그 맥을 다 자르기 전에 제주를 지키는 신이 알아챘습니다.
제주의 신은 그들을 응징했지요.
그래서 중국의 호종단은 신의 노여움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차귀도에 이르렀을 때,
제주의 신은 큰 바람을 일으켜 그들의 배를 뒤집어 버렸습니다.
제주를 망치러 온 중국의 호종단은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불귀의 객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차귀도라는 이름이, 막을 차(遮), 돌아갈 귀(歸)를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돌아가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전설이 또 하나 있습니다.
차귀도에 아름다운 여인이 하나 살았는데,
큰 섬의 사내들이 그 여인을 보러 밤배를 타곤 했답니다.
하지만 차귀도에 간 사내들이 하나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섬을 빠져 나오려는 사내들의 배를 거친 파도가 다 뒤집어 버린 것이지요.
나는 앞의 전설보다는 뒤의 전설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절대의 아름다움은 죽음과 맞바꿀 만한 것이란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래서 내 머릿속의 차귀도는 절대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가가면 만날 수는 있겠지만,
가도 아주 만날 수 없는 그대처럼 말입니다.
그대에게 수많은 말을 하였지만,
정작 편지를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람의 말은 부스러기도 없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추억뿐이지요.
당신의 슬픔과 나의 슬픔이 만나 위안을 얻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정의는 사랑에 대한 모독이지요.
비로소 나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이 내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참 오래 걸렸습니다.
여전히 순한 귀를 가지고 있을 당신,
한 가지만 부탁을 할게요.
아프지 말아요.
나는 늘 물처럼 부드럽게 말했으나,
그 말들이 파도가 되어 당신을 아프게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당신,
아프지 말아요.
행여 당신이 아플까 봐,
나는 속삭임마저도 숨깁니다.
그러니 당신,
아프지 말아요.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봄이 또 올 때까지.
당신이 당신으로 살 천년 동안 아프지 말아요.
이대흠
1967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9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