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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아내의 빈 자리
바가지 | 추천 (0) | 조회 (519)

2011-01-25 19:05


 

인명이 재천이라 했던가.
아무런 준비도, 예고도 없이 운명의 종말이 찾아올 줄이야.
행복하고 단란했던 우리가정은 일순간에 풍비박산이 났다.
몸부림치던 그 비극의 날은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
 

1993년 5월 29일 토요일 오후,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우리 가족 모두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을 향하였다.
날로 푸르러만 가는 무성하고 깨끗한 5월의 산과 들을 바라보면서
아내와 두 딸은 오랜만의 고향 나들이라 그저 즐겁고 행복해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서대전 부근의 호남 고속도로를 지날 때였다.
2차선으로 달리던 승용차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하여 끼어 들었다.
나는 그 차를 피라려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순간 차체가 왼쪽으로 틀리면서 중앙분리대 화단을 넘어
반대 방향에서 달려오던 승용차와 정면 충돌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의식이 돌아와 깨어났을 때,
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부서져 있었고 아내와 큰 딸은 의식이 없었다.
그날 밤에 아내는 영영 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사람들은 이럴 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고 했나보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얘기를 했던
아내가 죽었다는 것은 도저히 인정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동료들은 나를 위로하며 현실을 인정하라고 설득하였다.
나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나 혼자 살아있다는 것이 더 큰 괴로움이었다.
 

3일 후 아내는 안성 천주교 묘지로 옮겨졌다.
나는 앰브런스에 실린 채 아내의 뒤를 따라가야 했다.
10년간의 우리의 사랑,
아직도 못다한 우리의 사랑을 접어두고 결별을 선언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반 평의 무덤에 아내를 묻으며 나는 울부짖었다.

“두 딸 훌륭하게 키우겠소. 이 못난 남편 용서하고 부디 하늘 나라에서 편히 쉬오.”

이렇게 쉽게 살 것을 그렇게 잘 살아 보려고 애쓰며 힘들게 달려왔단 말인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 하더니 정말 빈손으로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이세상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이었다.
나는 복받치는 설움을 삼키며 그녀를 가슴속에 영원히 묻어야 하는 내 운명을 한탄했다.

다행히 큰 딸은 성모병원에 장파열 수술을 받고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나는 대전 국군병원에 입원하여 골절수술을 받았다.
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서야 우리 세 식구는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애들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몰랐다.
그러나 나는 고통스럽게 입을 열어 그녀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다시 만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 셋은 끌어안고 울었다.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해버린 딸들이 오히려 아빠를 위로하였다.
그것이 서러워서 난 또 울었다.

다음 날, 국화꽃을 엄마의 묘소에 꽂으며 애써 울음을 참는 딸들에게 말했다.
“엄마는 착한 일을 많이 하셔서 하나님이 옆에 두려고 일찍 불러 가신거야.
엄마가 하늘 나라에서 보고 있으니까 선미, 선경이 착하게 자라야 해.”
 

텅 빈 집안은 더없이 쓸쓸하고 허전하였다.
구석구석 배어있는 아내의 손길이 애처로워 이 구석 저 구석에 머리를 묻고 눈시울을 적시었다.
나는 옷가지와 사진을 정리하고 밀린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갔다.
통장이 몇 개인지 애들 옷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든 것에 서툴렀다.
평소에 집안일을 소홀히 했던 것과 무관심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제서야 나는 왕처럼 군림했던 내 생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좀더 아내를 도와주고 사랑해 줄 걸."
서랍을 정리하다 그만 또 울어버리고 말았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받았던 봉급명세표를 아내는 하나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보관해 둔 것이다. 적은 봉급이었지만 소중히 여기고 아끼면서 살았던 착한 아내가 가여웠다.
소록소록 흰눈이 쌓이는 밤,
부엉이도 서럽게 울어대던 밤에 나는 내 곁을 떠나간 아내 생각이 간절해서
텅 빈 옆자리를 더듬으며 잠 못들고 뒤척였다.
그때마다 쌔근쌔근 잠든 딸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시장에 간 어머니가 보고 싶고 걱정이 되어 동구 밖에 나가 기다리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그 때 나는 하룻밤도 엄마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
하물며 엄마가 영영 떠나가버린 내 아이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짐했다.
“이제는 엄마의 몫까지 해야 한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제는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 없이 살기를" 갈구했던 시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줄기 바람처럼 스쳐가는 나의 인생, 이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남은 세월을 진실하고 깨끗하게,
아무런 욕심도 부리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절대적인 사랑을 하면서,
주어진 내 운명에 순응하면서,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오늘도 해는 서산에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