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곁을 떠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지 어언 4년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만 남긴 채 각자의 길을 향해 걸으며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그와 함께한 6년 동안의 긴 만남 속에는 웃음보다 울었던 기억이 더 많다.
그는 집에서 외동아들이었다.
그의 부모님들이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큰 까닭에
그는 동생들 뒷바라지에 가장 노릇까지 해야 하는 나와 교제하면서 너무도 힘들어 했다.
하나뿐인 아들,
아니 하나뿐일 당신의 며느리감으로는 내가 안찼다는 것이다.
그의 부모님들은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그를 가만두지 않으셨다.
몇 안되는 그의 친구들을 시켜 우리들의 사이를 갈라 놓으려 하셨다.
지나칠 만큼 각별한 부모님의 사랑을 저버리지도 못하고
나의 힘들어 하는 모습도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그는 얼마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그 때 그는 공중 전화로 내게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전화로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그가 가진 동전이 다 떨어질 때쯤이면
둘은 안타까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전화를 끊어야 했다.
그는 참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나만 보면 안타까워 자꾸만 눈물이 난다던 그 사람.
오늘같이 비가 오고 날씨가 흐린 날이면 마음속 깊숙한 곳에 묻어 두었던
그에 대한 좋은 감정과 함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 눈오던 날 밤,
어두운 교정의 벤치에서 마지막으로 불러주던 그 사람의 하모니카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자욱하다.
추위를 많이 타던 그 사람 때문에 나는 따뜻한 봄을 좋아했다.
나의 근무지와 그 사람의 근무지는 고속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채 안되는 거리였는데 우리는 버스 안에서 데이트를 하곤 했다.
계속적으로 어려움을 느끼자,
그는 헤어지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며 군대 입대를 하였다.
군대 간 지 2개월이 넘도록 소식 한장 없던 그 사람을 위해
나는 언젠가는 주소를 알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편지를 썼다.
번호를 붙여 가면서 그렇게 쓴 편지가 일흔 여덟 통이 되었을 때 나는 그의 주소를 알아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일흔 여덟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가 편지를 받기 전에 부대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고참에게 문책을 받고서야 그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나는 면회간다는 연락도 하지 않고 무작정 경부선을 탔다.
그 때 나는 택시 기사를 황당하게 할 만큼 사랑에 눈먼, 그리고 당찬 경상도 아가씨였다.
주소 한 장만 달랑들고 상경했기 때문이다. 물어 물어서 찾아간 부대는 진짜 산골짜기였다.
조용한 산골의 일요일 새벽은 오직 눈에 푹푹 빠지고 있는 내 구두 소리 뿐이었다.
면회할 사람을 얘기하자 면회실에서는 그 유명한 경상도 아가씨가 왔다며 수군거렸다.
잠시 후,
조급한 마음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나의 시야에 말끔하게 군복을 차려 입은 그 사람이 들어 왔다.
면회실 고참들에게 인사를 하는 그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주루룩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 앞에 와서 하는 첫말은 "추운데 뭣하러 왔어.
그리고 편지는 뭐하러 부쳐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어"
하는 것이었다.
무뚝뚝한 사람,
나의 타는 속도 모르고 그는 애꿎은 소리만 해댔다.
나는 주말마다 경부선에 몸을 실었다.
그것도 잠시,
어느 날 그는 전방으로 들어간다며 그곳은 면회를 절대 올 수 없는 곳이라 했다.
마지막 만남이었던 날,
그는 내가 싫어졌다면서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 후로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나는 같이 전방으로 들어간 하사로부터 주소를 듣고는 그에게 답장없는 편지를 계속해서 썼다.
우린 정말 맺어질 수 없는 걸까?
서로의 행복을 위해 헤어져야만 하는 걸까?
나는 그 사람이 그리워 질 때마다 술을 마셨다.
거의 매일 같이 술을 마셔서 건강도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나는 결정을 했다.
우리가 헤어지는 것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헤어지자고.
나는 곧 그 사람과 추억이 어린 그 도시를 떠났다.
낯선 도시에서 생활이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을 무렵,
내 친구에게서 연락처를 알았다며 휴가나온 그가 전화를 해왔다.
나는 만남을 거절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몇 번이고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울면서 참아야 했다.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야 해.
나같은 사람은 만나면 안돼.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난 역시 혼자가 좋아.
행복해라.”
휴가 마지막 날 걸려온 전화에서 나는 그의 간절한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남편을 만나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에도 그 사람은 바다가 있는 도시에서 혼자 살고 있다.
가끔씩 그 사람이 생각날 적마다 벅찰 정도로 정답게 대해 주는 나의 남편에게 미안하다.
그 사람이 빨리 좋은 인연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이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된다.
평생토록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그로 인해 결혼 생활이 평탄치 못했을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자상한 남편과 예쁜 아이가 있고,
영원히 가슴 속에 묻어 두고 간직할 수 있는 첫사랑의 여운이 있는 한 나는 무한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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