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에서 돌고 도는 대나무 "찐 밥"
새벽이었다.
그녀는 오늘도 라오스 전통의상으로 예쁘게 차려입었다.
“사바이디!”
“호호, 오늘도 나왔네요.”
말할 때 살짝 웃는 얼굴이 예쁘다.
사실 대부분 라오스 사람들이 그렇다.
말을 않고 있을 때는 지극히 평범하고 무료해 보이다가도 미소를 지을 때면 주변 세상을 모두 환하게 만든다.
오늘도 그녀는 "찐 밥"이 든 대나무 밥통을 들었고,
난 사진기를 들었다.
그녀는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 사거리 바닥에 하얀 천을 깔았다.
그리곤 무릎 꿇고 앉는다.
맞은 편 건물의 인디아 음식점 주인장도 벌써 나와 있다.
골목길마다 한두 사람씩 띄엄띄엄 등장하고, 길은 점점 낯설고도 경건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저마다 펼쳐둔 찐 밥과 바나나와 그밖에 과일과 음식물들이 어느 시장의 좌판처럼 보이게 하다가도
그 안에 스며있는 어떤 특별한 경건함이 그곳을 길 위의 사원으로 만들고 있다.
드디어 저 멀리 골목 끝에서 주황색 물결이 꾸물꾸물 시작된다.
1년 365일 하루도 멈추지 않는,
"딱밧"이다.
그녀는 내가 3일째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이다.
게스트하우스는 아주 아담해서 작은 마당을 가진 2층 건물에 아래위로 방 세 개씩 있는 것이 다였다.
그런데도 며칠을 지내는 동안 이 작은 호텔이 꽉 차는 걸 본 적이 없다.
아무리 비수기라지만,
이곳은 라오스 최고의 관광지인 고도(古都) 루앙프라방이 아니던가.
하지만 도무지 그녀는 그딴 것들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새벽이면 딱밧을 하고 하루 종일 있는 듯 없는 듯 프런트를 지키다가 저녁때가 되면 강을 따라 거닐다 들어왔다.
참으로 단순하고도 고요한 삶이다.
반면 이 숙소에 머무는 몇 안 되는 여행자들은 바쁘다.
특히 프랑스에서 온 커플은 유난히 부지런하다.
우리가 루앙프라방에 도착한 다음 날에는 하루 종일 비가 왔었는데,
방문을 열어 두고 비 내리는 걸 구경하고 있으면,
그들은 우비를 입고 왔다 갔다 하며,
트래킹을 다녀왔어요, 보트투어를 했죠, 사원이 정말 아름다워요, 라고 자신들의 부지런함을 자랑했다.
또 한 커플은 미국에서 온 흑인 커플이었는데,
곧잘 큰소리가 우리 방까지 넘어오곤 했었다.
그러다가도 어느새 호탕한 웃음소리가 나더니,
하필 우리 방 방문 앞까지 와서 키스를 하며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리고도 아침 일찍 나가 저녁 어스름에야 돌아오는 스웨덴에서 온 청년과 발랄하고 수다스런 이탈리아 여인이 더 있었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이런 다양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있으니,
그것은 새벽 딱밧이었다.
주황색 승복의 딱밧 행렬이 시작되자,
공양을 하는 라오스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를 구경하기 위해 나온 여행자들도 늘어났다.
일부는 물끄러미 길옆에 섰고, 일부는 나처럼 카메라를 들고 분주했다.
그 중에는 한국인처럼 보이는 단체여행자들도 있었다.
그들 앞에는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인지 한 라오스 남자가 몇 박스나 되는 음식을 쌓아두고 공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앉은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금발의 서양여성이었다.
복장으로 보아 이곳에 사는 주민이 아니라 그녀 또한 나처럼 여행자였다.
처음에 그녀는 즐거워했고, 색다른 경험에 대해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나는 다른 여행자들처럼 그녀 역시 준비한 공양 음식이 떨어지면 곧 자리에서 일어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계속해서 상인들이 준비해둔 음식을 추가로 구입했다.
더 많은 주황색의 물결이 지나가고
더 많은 카메라 셔터의 "찰칵" 효과음이 반복된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점점 그녀는 무엇엔가 빠져들었고,
이제 웃음기 든 얼굴은 가고 경건하고 진지한 눈빛이 안면에 가득했다.
사진기 뷰파인더를 통해 그 기운은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다.
이제 오히려 쑥스러워 하는 건 아직 아기 티를 채 벗지 못한 어린 스님들이었다.
그리고 공양 줄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또 다른 꼬마들이 앉아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뗏국물이 흘렀고 행색은 더없이 꾀죄죄하였으며,
그들 앞에 놓인 대나무 통은 비어있었다.
어린 스님들은 공양 받은 음식 중에서 과일이나 과자와 같이 한 손에 쥐어지는 것들을 골라내어
길바닥에 앉아 있는 그들 또래 꼬마들의 대나무 통을 한 명씩 채워주었다.
사실 딱밧은 이곳에선 스님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낮추는 수행의 길이다.
그리고 시민들에겐 공양을 나누며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얻는 종교의식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더 있었던 것이다.
거리의 아이들과 같이 절대빈곤의 위기에 놓은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이이었던 것이다.
서양처럼 이렇다 할 복지제도를 갖추지 않고서도 사회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공양 음식은 이렇게 매일 아침 우리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과 같은 시민들의 손에서,
스님들의 발우 속으로,
다시 거리의 아이들의 대나무 밥그릇으로 돌고 도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라오스 사람들의 그 맑고 선하고 아름다운 미소.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곳 라오스에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착하지도 않고, 멍청하고 게으르고 답답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여행하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여행자의 시각과 이곳에서 사는 이주민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주민의 시공간이 현실이라면, 여행자의 시공간은 꿈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내가 타고 있는 배를 제외하고 모든 바다에 떠 있는 배는 낭만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실을 너무 잘 아는 이는 여행을 할 수 없다.
왜냐면 어딜 가든 또 하나의 현실이 있는 한에서 여행은 그저 소비행위일 뿐이니까.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고 끊임없이 소비만 하는 삶 말이다.
물론 나 역시도 여행자의 눈에는 욕심도 없고 한없이 아름답고 순해 보이는 라오스 사람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이의 눈에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여행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그리고 여행자의 시공간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잠시 동안 현실을 좀 보지 않으면 어떤가.
그동안 넘치게 현실을 보고,
넘치게 현실을 살아온 우리들이 1년에 한 달쯤, 한 달에 하루 이틀쯤
그 찌든 현실을 못 본 척하며 살아보는 건 어떤가 이 말이다.
게다가 가끔 나는 어쩌면 여행자의 시각이 좀 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여행자의 꿈결 같은 시각에 걸리는 풍경들이
사실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현실 속에 길들여지기 이전의 그들 모습이 아닐까, 하는.
딱밧이 끝났다.
어린 스님들도 모두 사라졌고,
빈 바구니를 가득 채운 거리의 꼬마들도 보이지 않았다.
박스를 쌓아두고 공양하던 라오스 남자도,
눈빛이 참 맑아 보이던 서양여성도 자리를 걷고 일어났다.
이제 그들 모두는 또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떠오른 태양을 향해 걸어 들어갈 것이다.
누군가는 시장을 향해,
또 누군가는 학교를 향해,
물론 여행자는 아침밥을 해결하기 위해 레스토랑을 향해,
그리고 내일 새벽 다시 "찐 밥"을 들고 변함없는 그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우리 게스트하우스의 여주인장은 있는 듯 없는 듯 프런트를 향해.
김향미, 양학용님 여행작가
결혼 10년을 맞아, 배낭을 꾸려 47개국을 967일간 누볐다.
그 여정을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와 《여행자의 유혹》(공저)에 담았다.
지금은 여행작가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여행학교"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