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과연 도와주는가? 그리고 과연 뿌린 대로 거둘 수 있는가"
언제부터인지 내 마음속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찼습니다.
바로 3년전 일입니다.
그 때 나는 정들었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오래 전부터 꿈꾸어오던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얼마동안 중국과 국내 시장조사를 열심히 한 뒤
모아 두었던 적금, 퇴직금, 모두와 상당액의 빚까지 얻어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생각보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러시아와 수출계약이 이루어졌고 현지 주요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현실인가 의심할 정도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현지 인사들과 사업상 이어지는 술자리,
돈 봉투에 지친 내가 그들을 좀 소홀히 대하자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일을 방해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의 일부 공화국의 내전으로 인하여
거래처의 사업장이 폐쇄되어 상당한 수출대금을 회수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일이 더 어려워지고 심한 자금 압박까지 겹쳐 나는 더 이상 지탱할 힘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서울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주위에서는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라며 위로했지만 나로서는 사업실패의 아픔보다
그 동안 빌려쓴 돈을 어떻게 다 갚아야 할 지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조그만 주점을 개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건달의 이유 없는 시비에 말려들어 주먹다짐을 하였는데
내가 오히려 폭행가해자로 몰렸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공사판을 전전하며 도피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평생 숨어 다니지 못할 바에야 하루라도 빨리 죗값을 치르자는 생각에 피해자를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원만한 합의를 보았으나 이 과정에서도 꽤 많은 돈을 썼습니다.
일을 마무리한 뒤 가게로 가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집주인은 내가 없는 사이에 가게를 팔고 어디론가 사라진 것입니다.
"내 모든 재산이었는데···"
정말로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동안 알고 지내던 주위 사람들에게 장사밑천을 빌리려 찾아갔지만 모두가 거절하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짓밟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습니다.
반드시 재기하고야 만다는···
며칠 후, 괴로웠던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작은 항구도시인 그곳에서 그럴 처지는 못되었지만 먼 친척동생의 소개로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의 이상형이라는 것을 느껴,
이후 자연스럽게 계속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요즘 여자 같지 않은 이른 아침 나팔꽃잎에 맺혀 있는 맑은 이슬과도 같았습니다.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일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주말이면 그녀를 만나기 위해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고
한없는 기쁨과 그리움으로 그 먼 거리를 오갔습니다.
우리는 눈 내리는 바닷가를 걸으며 사랑을 얘기했고
파도가 부서지는 방파제에 서서 믿음을 맹세하였습니다.
어느 날 우산 속에서 살짝 입맞춤한 그녀의 입술에서는 상큼한 풀 냄새가 났습니다.
어쩔 줄 몰라 얼굴을 붉히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고···.
너무나 귀여운 그녀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굳게 약속하였습니다.
"내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리라"고.
그러나 변변한 일자리 하나 없던 나는 모든 일을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하루라고 빨리 많은 돈을 벌어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내 마음을 안 그녀는 가난해도 소박하게 살자며 나를 말렸습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면 가난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물욕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렇게 서두르다보니 하는 일마다 틀어지고 실패했습니다.
나는 절망하여 술을 입에 댔고 나도 모르는 실수를 그녀에게 자주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근심스런 얼굴에 신경질적인 말투가 되었습니다.
그녀도 이런 내모습에 견딜 수 없었던지 어느 날 이별을 고해왔습니다.
나는 눈물로 호소하였지만 그녀는 결국 내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나는 너무 쉽게 그녀를 떠나보낸 것 같아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별의 아픔으로 몇 날 며칠을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다 불면증으로 병원에 있는 친구에게 얻어 놓은 수면제가 생각이 났습니다.
자살을 기도한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여자에게 버림받고,
일자리도 없는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불쌍했습니다.
수면제를 스무 알쯤 한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영원히 잠들라고···
눈물이 귓불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녀의 행복을 빌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내가 의심스러워 볼을 꼬집고 거울을 보았습니다.
언젠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소화제, 항생제들을 한 병에 담아 두었는데
수면제인줄 알고 잘못 먹은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부끄럽고 창피하게 느껴졌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했습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죽기는 왜 죽어요! 그럴 용기로 더 잘살아 보려고 노력해봐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래, 난 다시 태어난 거야.
어차피 죽으려고 작정했는데 무슨 일을 못할까.
이제부터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자.
그녀에게 나의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자"
마음 어디선가 용기가 솟아올랐습니다.
지금 저는 얼마 전에 취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며 해외지사로 파견근무를 가게 됩니다.
괴로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정말 참다운 인생설계를 하였습니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돌아올 것입니다.
만약 그때까지 그녀가 나를 잊지 않고 기다려준다면 그녀 옆에 당당히 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