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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쌍둥이 엄마 ! 그래도 힘냅시다
바가지 | 추천 (0) | 조회 (392)

2011-01-30 18:06


 

20대 초반인 어린 나이에 저는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만 34시간 산고 끝에 얻은 두 아들은 기쁨보다는 슬픔을 먼저 안겨주었습니다.
큰 애는 1.6㎏ 작은 애는 2.0㎏ 둘다 미숙아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큰 아기는 턱이 돌아가고 한쪽 가슴이 움푹 패인 아주 볼품 없는 아기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은 그 아기를 포기하라고 하셨습니다.
참 기막힌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돼, 포기할 수 없어!"라고 생각한 저는 아기아빠에게 무조건 데리고 퇴원하자고 했습니다.
아빠는 망설이고 의사선생님은 작은 아이만 데리고 퇴원하라고 하셨습니다.
끝내 저는 큰 아이를 안고 아기아빠는 작은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큰 병원에 가자니 형편이 어려워 큰 아기는 솜뭉치에 싸서 아랫목에 가만히 두었습니다.
그리고 목욕도 시키지 않은 채 우유만 먹이고 기저귀만 갈아주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서야 큰 애를 겨우 목욕 시킬 수 있었습니다.
큰 애의 턱을 바로 잡기 위해 수건을 받혀주고 온갖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면서 아이가 제발 건강히 자라주기만을 바랬습니다.
쌍둥이는 정상 아기들이 뒤집고 기어다닐 때 앉고,
걸어다닐 때 기고, 모든 게 한단계씩 늦었습니다.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안된다는 큰 아기는 턱이 점점 원래대로 돌아오고 가슴도 살아나는 등 거의 신체적으로 정상아에 가깝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첫돌이 지날 때였습니다.
문소리에 작은 아이는 깜짝 놀라 울곤 했는데 큰 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저는 아이를 데리고 이비인후과를 찾아갔습니다.
“아이는 청신경이 죽어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검사결과는 정말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손이 떨립니다.
지닌 병은 자랑하라 했나요.
저는 아이가 이렇다고 이웃에 친척분들께 모두 알렸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조기교육과 보청기착용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힘을 냈습니다.
만 22개월 되던 때 큰 아이를 부산 구화학교 유치부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작은 아이가 너무 늦게까지 걸음을 못 걷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아이 때문에 작은 아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작은 아이가 뇌성마비여서 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돼요. 안돼. 이 예쁜 아이가··· 이 아이마저···."
 
그날부터 저는 또 한가지 근심이 늘었습니다.
아침에 도시락을 사들고 나와서 오전에는 큰 애 학교에,
오후에는 작은 애 물리치료실로 옮겨 다녔고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자 큰 아이가 아빠! 소리를 내자 그동안 고달픔이 소리없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걷지 못할 것이라던 작은 아이는 어느 날 벽에 세워놓았는데 자박자박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아! 하면 되는구나"
 
저는 아이들을 "내 손끝이 닿는 대로 열심히 키워보리라" 굳게 결심했습니다.

우선 집안에 있는 물건에 모두 이름을 써서 붙이고 항상 연습을 시켰습니다.
장롱 안에 있는 이불, 베개까지도···.
큰 애가 한 음절 두 음절 때마다 저는 절로 힘이 솟았습니다.
동시 외우기, 동화 외우기 등, 큰 애 효중이는 외우기도 잘했습니다.
한번은 자기는 다 외웠는데 엄마는 못외웠다며 바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항상 먼저 외워 아이에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항상 칫솔질도 같이 하면서 목에서 괄괄소리를 내 따라하게 하고
수건, 비누 모든 사물을 서로 묻고 대답했습니다.
놀이시설을 이용할 때도 시이소를 타게 되면 우선 소리부터 듣게 하고
시이소가 내려가면 "내려가요" 올라가면 "올라가요"하는 말을 하게 했습니다.
힘은 들었지만 아이는 책상앞에 앉아 이거다 저거다 하는 것보다 훨신 말을 빨리 배워 갔습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청각장애는 어렸을 때부터 발음과 말을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게 가르쳤다면 우리 아이는 지금 정도의 말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작은 아이 얘기를 할까 합니다.
작은 아이는 중복장애입니다.
약간은 뇌성마비에 자폐정박까지.
산 너머 산이라는 말이 우리 작은 애 철중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4살까지도 못걷던 아이가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아 겨우 걷더니
이제는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잠깐이라도 안 보이면 벽이고 유리창이고 무조건 머리를 박는 겁니다.
화장실 안까지 데리고 다녀야 했습니다.
하루는 시장을 갔는데 잠깐 하는 사이에 가구점 벽면유리를 머리로 박아서 깼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이마에 혹이 조금 났을 뿐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길가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엄마속 꽤나 썩이겠다며 동물원 보듯 빙 둘러섰습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유리값 30만원을 고스란히 변상해 주고 왔습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아이 아빠가 퇴근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겁이 나요.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정말 자꾸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쌍동이 엄마! 당신은 세상 어머니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일은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당신이기에 우리 아이들이 저만큼이라도 자랄 수 있는 거요.
우리는 보통부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소.
그것에 대한 보람과 긍지도 있지 않소.”

인정받는 엄마, 남편의 따뜻한 위로는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장애가 있습니다.
그 중 청각장애는 정말 행복한 장애라고 느꼈습니다.
여러 장애인의 어머님들!
자신보다 나은 쪽을 보지 마시고 자신보다 못한 쪽을 생각하며 꿋꿋이 살아갑시다.
만약 큰 아이가 작은 아이처럼 그런 장애라면 저는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오늘도 저는 큰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작은 아이도 돌봐주며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