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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부족해도, 충만하고 풍요로운 라오스
바가지 | 추천 (0) | 조회 (359)

2011-02-08 17:21



어느 날 새벽, 우리 부부는 국경 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천천히 마을의 중심도로를 달리며 사람을 태우고 짐을 싣고,
가다 멈추고 기다리고를 반복하며 무심히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참으로 바쁠 것이 없는 삶이었다.

그사이 주황색의 딱밧 행렬이 지나갔고,
비온 뒤의 싱싱한 해가 떠올랐다.
라오스 여행 내내 보아 왔던 변함없는 풍경임에도,
낯설고도 경이롭다.
이제 버스는 빈 좌석 하나 없이 들어찼다.

그런데 사람들의 복장이 재미있다.
그래도 국경을 넘어 영토를 달리하는 국가로 들어가는 사람들 복장이란 게 조리나 슬리퍼나 샌들을 신고 있다.
국경 넘는 일이 마치 이웃동네 마실 다니는 것인 양 가볍다.
옷차림이 가벼운 만큼 그들 자신의 삶도 가볍고 평화로울 것 같다.
덕분에 그들의 삶을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의 시간도 가볍고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마을 중심을 벗어나자
곧바로 대나무로 엮어 만든 집들과 논밭이 이어지고 산과 구릉이 가까이 다가섰다.
 
“라오스는 80%의 인구가 시골에 살고 있고 대부분이 농부여서, 가난한 나라다.
이들은 약간의 돈 혹은 거의 돈을 벌지 못하는 상태라 원조가 필요하다.”
 
전날 폰사반에서 방문했던 한 세계구호단체의 홍보지에서 본 설명 문구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로컬버스를 타고 달리며 목격한 이 나라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어떤 논은 이미 추수를 끝냈고,
어떤 논은 막 모내기를 했고,
또 어떤 논은 벼가 푸르게 자라나고 있다.
일 년에 세 번, 삼모작이 가능한 기후이기 때문이다.
옥수수가 드넓게 자라고 있고, 바나나 나무가 지천이다.
또 집 앞 처마 밑에선 여인네들이 베를 짜고 있다.
풍요롭기 그지없다.
적어도 그들 속사정을 알 길이 없는 여행자의 눈에는 그렇다.

라오스 정부는 40여 년 전 토지개혁을 통해 땅과 집을 전 국민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라오스 사람들은 시골에서 특별한 욕심 없이 평생 동안 가족과 이웃이 전부인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삼모작이 가능한 농토가 그들 각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굶어죽지 않을 수 있다는 단순한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서양의 근대화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라오스는 국민의 80%가 여전히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저개발 혹은 비문명의 나라이고,
그래서 원조를 통해 서양의 과학기술을 배우게 하고 산업시설을 늘리고
전 국민이 모바일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농사를 짓고도 돈 한 푼 벌지 않아서,
휴대폰을 사고 인터넷을 할 수 없어서,
과연 가난하다고 생각할까.
역사상 최고로 풍요로운 시대에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항상 무언가를 소비하고 살아가지만
또 늘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현대인의 삶을 그들도 이해할까.

모르긴 해도 조금은 다를 것 같다.
씨앗을 뿌리고 자라게 하고 거두기까지 자연이 순환하는 섭리에 익숙해진 그들의 삶은
오히려 충분히 세상을 이해하고 나의 삶을 살아 냈다는 어떤 충만함 속에서 내일을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김향미, 양학용님 여행작가
결혼 10년을 맞아, 배낭을 꾸려 47개국을 967일간 누볐다.
그 여정을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와 《여행자의 유혹》(공저)에 담았다.
지금은 여행작가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여행학교"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