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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한쪽 다리로 일어나기
바가지 | 추천 (0) | 조회 (356)

2011-02-09 00:51


 
“여보세요? 김숙희 씨 맞죠?
김숙희 씨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병원에 있는데요….”

밤 10시 경에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 평온하던 우리 집은 순식간에 먹구름에 휩싸였다.
경주에 사는 고모님 댁에 갔다가 오는 길에 빗길에 차가 미끄러져
사고를 당한 언니는 다리 한쪽을 잃게 되었다.
밝고 쾌활한 성격에,
공부까지 잘 해 늘 칭찬받던 언니가 휠체어에 실린 채 파리한 모습으로 대문을 들어서던 날,
나는 언니에게서 눈을 돌려 버렸다.
글썽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변할까?"
사고 후 언니는 무섭게 변했다.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기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식구들과 얼굴을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휴학을 하고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교과서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가 하면 밤새 흐느꼈다.
언니의 울음소리는 싸늘한 밤공기에 실려 온 집안을 떠 다녔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아껴주던 단란한 집 분위기를 잃게 되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한 사람은 부모님이셨다.
나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언니가 고통과 방황의 늪에서 하루 빨리 빠져 나오기를 바랬다.
비록 한쪽 다리는 없지만 스스로를 인정하고 당당하게 삶을 개척해 나가기를 바랬다.
그러나 언니는 날이 갈수록 사람 만나기를 피했고 우울증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언니가 햇빛을 보지 못한지도 석 달,
뽀얗던 언니의 얼굴색은 마치 미라처럼 창백해졌다.
이렇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언니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대화를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싫다는 언니를 억지로 휠체어에 태우고 바깥바람을 쏘여 주기를 며칠,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니는 저만치서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빨리 집안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그래, 언니는 한쪽 다리가 없어.
그렇다고 정신까지 잘라내면 안돼.
그토록 명랑하던 언니가 왜 그래?
다리 하나 없다고 세상을 다 산 것처럼 그러지마.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어.
거기에 굴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진짜 병신이야.
언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리고 새 삶을 살겠다고 이를 악물어.
아무도 언니에게 손가락질 하지 않아.”
 

나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 후로 가족들을 대하는 언니의 태도는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식구들의 극진한 보살핌과 사랑으로 언니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갔다.
 
“저 때문에 엄마, 아버지 그동안 마음고생 심하셨죠.
앞으로는 누가 "다리병신"이라고 놀려도 울지 않을 거예요.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겠어요.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착한 딸. 좋은 언니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언니는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가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아버지께서는 월급을 몽땅 털어 의족을 사 오셨다.
언니는 그 고무다리를 끼우고 걸음 연습을 하였다.
비록 뛰거나 빨리 걷지는 못했지만 언니는 정상인과 다름없었다.
체육시간 외에는 다리가 없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런데 졸업 후 언니는 취직이 안 되자 또다시 어둠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좌절하고 있는 언니에게 나는 소일거리를 주기 위해 예쁜 핑크색 털실과 뜨개바늘을 선물하였다.
언니는 수예점에서 모자, 장갑, 조끼, 스웨터 뜨는 법을 배워 와서 뜨개질을 하였다.
그 덕분에 우리는 언니가 떠 준 옷가지들로 그 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언니의 뜨개질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강아지 젖꼭지 마냥 꽃망울이 뾰족 돋아날 즈음 언니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엄마, 처음 제 힘으로 번 돈이에요.
수예점 아주머니께서 제가 뜨개질 한 것을 팔아 주셨어요.
앞으로는 이 일을 본격적으로 해볼까 해요.”
 

그 후 언니는 밤낮으로 뜨개질에 몰두하였다.
뜨개질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더 지났을 때 수예점을 운영하던 아주머니가 사정상 가게를 내어 놓자
부모님은 부어오던 적금까지 해약하면서 언니에게 가게를 마련해 주었다.
언니는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밤 10시까지 열성적으로 일을 하였다.

“나는 이 일에 내 인생에 승부를 걸고 싶어.
한국 아니, 세계에서 제일가는 뜨개질 선수가 될 거야.”
 

언니의 희망찬 앞날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나의 두 볼을 타고 내렸다.
수예점을 시작한 지 3년이 조금 지났을 즈음
언니는 가끔씩 수예점을 찾아오던 한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
월급날이면 자기 어머니 선물이라며 스웨터와 식탁보 등을 사 가던
그 남자의 따뜻한 마음을 언니는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그 남자는 언니에게 결혼 신청을 했다.
그는 언니의 사고를 알고 있었으며 1년 동안 언니를 쭉 지켜봐 왔는데
상냥하고 씩씩한 모습이 맘에 들었단다.
그 다음 날 양가 부모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어느 한군데 모나지 않은 그 사람을 보고 결혼 승낙을 했으나
남자 집에서는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을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하게 결혼을 반대했다.
그 후유증으로 언니는 가게를 그만 두었고 한동안 집에서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지금 나의 형부가 된 그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부모님을 설득하였다.
마침내 언니는 그 사람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비록 신체적으로는 남에게 뒤지지만
남편 모시기, 부모님 공양하기, 형제간의 우애 돈독하게 하기에는 뒤질 수 없다며
언니는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았다.
 

“사돈어른, 이런 참한 딸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에게는 복에 겨운 며느리예요.”
 

사돈어른의 전화를 받고 나서 엄마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오랜 세월 막혔던 것을 눈물로서 뚫어내는 것이리라.
 

“네 언니가 시어른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니 더 바랄 것이 없구나. 에그 불쌍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