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즈음 나는 대학입시를 얼마 앞두지 않은 터라 9시 50분까지 야간자습을 하고,
차로 40~50분이 걸리는 집엔 거의 막차를 타고 가야 했다.
집이 큰길 앞에 있어 부모님은 가끔 마중을 나올 뿐 별 걱정을 안 하셨고
나 또 한 별 무서움 없이 밤길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다른 때와 같이 11시쯤이 다 되었을 무렵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들이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무서움에 질린 채 얼마나 끌려갔을까.
눈을 떠 보니 그곳은 인적 없는,
나무만 쌓아 놓은 아주 외진 목재소의 한구석이었다.
5명의 청년들이 나를 때리고 옷을 벗기고 폭행을 하는 동안
난 반항할 힘이 없어 험한 짓을 당했고 곧 기절해버렸다.
한쪽 구석에 쓰레기보다 못한 꼴로 버려져서 눈을 떠 보니 그때는 깜깜한 새벽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엉망이 된 몸을 추스르고 가방과 신발을 들고 집으로 갔다.
그러나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며 대문 앞에서 울고 있으려니까 엄마가 나오셨다.
내 모습을 놀란 어머니가 나를 끌고 들어가셨다.
상황을 짐작한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속상한 마음에 나를 때리기 시작하셨다.
죽고 싶었다.
입시를 앞두었다는 것도,
학교를 가야한다는 것도 안중엔 없었다.
왠지 모두들 내 얼굴을 보는 것 같아 방문 밖에도 나갈 수 없고,
누구의 얼굴도 볼 수 없는 내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가족들의 소리 없는 침묵은 나를 더욱 더 외롭게 만들었다.
난 창문 옆의 구석에 앉아 말한 마디 하지 않고 먹지도 않으며 멍하니 앉아 있을 뿐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매일 울고 계신 엄마와 술에 취해 소리 지르시는 아빠
그리고 눈치만 살피는 동생들을 보고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먹지 않고 굶어서 죽을 생각으로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있었지만,
참기 힘들 정도로 괴롭고 배가 고프고 힘이 없었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고 더욱 괴로운 것은 혐오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끔찍한 생각은 하루 종일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항상 자살을 생각했다.
내가 있어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욕되지 않을까 싶어서 약을 먹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욕심쟁이 우등생이었던
나는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채 치욕에 몸만 떨었다.
그래서 집안에 있는 항생제와 수면제를 모두 가져다 놓고 한 대접이 넘는 약을 먹고 누웠다.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나고 잠이 오기 시작했다.
난 눈물을 흘리면서 가족들에게 용서를 빈다고 중얼거리며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고
식구들과 친구들, 선생님까지 침묵 속에서 조심스럽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를 살려준 사람과 그들 모두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마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일어나 보려고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병실에서 일주일 정도를 치료받으면서도 가족들과 부모님을 별로 말씀이 없으셨다.
그때도 난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았고 때론 아무도 병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침대 옆 구석에서 떨면서 우는 일이 많았지만 그러는 나를 달래주려고 노력하는 이도 없었다.
나는 혼자였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 정신과치료를 받아보라는 권유를 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소리 내어 울기만 했다.
부모님도 창피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과일을 깎으려고 놓아둔 칼을 발견한 후 다시 한번 자살을 생각한 나는 칼을 침대 밑에 숨겨 두었다.
퇴원을 앞둔 전날,
병실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병실 문을 잠그고 팔목을 칼로 그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찢어진 팔목의 수술을 위해 수술 옮겨진 다음
간호사들이 팔목의 피를 닦을 때 그제야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알았다.
나는 살았다는 것에 또 절망했다.
수술을 마치고 나서야 부모님은 내가 정신과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자살을 두 번이나 시도했을 만큼 괴로웠던 나에게
조금이나마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해 주신 분은 바로 담당의사 선생님이셨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고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선생님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의사선생님이 찾아오셔서 대화를 시작했지만
차츰 난 무슨 얘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답답할 때면 자연스럽게 정신병동을 찾았다.
그 때 치료를 맡아 주셨던 의사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지금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그 때 그런 일이 벌어진 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으며
나는 자책감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만약 선생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더라면 나는 이제 끝난 인생이라고 모든 것을 원망하며
나를 미워했을 것이고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자살할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정말 자신감에 차있고 밝고 명랑한 아이었던 나,
지금 나는 그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인생을 포기하고 자살을 하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임을 말해주고 싶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면 그 사람에게 정말로 치명적이고 가슴 아픈 문제가 있다는 것이 짐작이 가지만
절망, 실패, 분노, 이런 것들은 모두 극복되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포기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6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사람을 외면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일을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지내고 있다.
이젠 대학을 갈 준비도 하고 있고 조그만 직장에 다니면서 생활에 충실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며 밝게 살아갈 자신이 생겼다.
그동안 나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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