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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세상에서 하나뿐인, 아주 특별한 염전
바가지 | 추천 (0) | 조회 (405)

2011-02-11 02:39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제주에서는 소금이 귀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제주의 땅과 관련이 있는데,
화산토라서 물 빠짐이 너무 잘 되어 염전을 만들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땅에 물을 가둘 수 있어야 벼농사도 짓고,
소금 농사도 지을 수 있었을 것인데,
제주의 땅은 얼개미(체)와 같아서 물을 부으면 쑥 빠져 버립니다.

그래서 어느 지역보다 쏠(쌀)과 소금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제주에서는 자식들 결혼시킬 때를 대비해서 쏠(쌀)계를 들었고,
바닷물을 길어 와 솥에 넣고 끓여 소금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염전이나 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귀포나 고산의 일부 지역에서는 논농사를 지었고,
군데군데 염전이 있었습니다.
종달리, 일과리, 태흥리, 구엄리 등에 염전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독특한 것이 구엄리에 있었던 돌염전입니다.

제주의 해안도로 중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곳이 애월 해안도로입니다.
해안도로의 입구는 하귀이고,
이내 구엄, 중엄, 신엄, 고내, 애월로 이어집니다.
바다는 둥그렇게 제 몸을 구부려 세상을 알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파도는 우주의 파동처럼 끊임이 없습니다.
오래 전 불을 뿜었던 섬.
처음의 불길은 성났을 것이고,
그 물처럼 흘렀을 불이 바닷물에 닿아 우뚝 서 버린 것이 구엄 앞 소금빌레일 것입니다.
 
 
빌레(너럭바위)는 넓고,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듯하고,
단박에 멈춰 그대로 정지한 듯하고,
솟구치고,
날아가다,
별안간 뚝 떨어진 듯합니다.
마치 세상에서 내로라하는 재주꾼들이 전부 모여,
각자가 마음속에 그려 놓은 형상을 조각해 놓은 것 같습니다.

돌염전은 이 빌레에 발달한 주상절리의 틈 사이를 진흙으로 메워 만들었는데,
그 진흙 둑을 두렁이라 하였습니다.
거북의 등짝 무늬와도 같은 주상절리 하나하나가 하나의 소금 다랑치(논)였던 셈입니다.
그곳에 바닷물을 퍼 올려 밭에서 밭으로 옮겨 가며 염도를 높였고,
그렇게 자연을 이용하여 나온 소금을 돌소금이라고 하였습니다.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주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염전 사람들은 소금이 햇살의 몸처럼 희게 부서질 때,
“소금 오신다.”라거나, “소금 내린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소금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인데 오히려 내린다고 표현하는 것은,
바닷물이 소금으로 될 때까지는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햇살과 바람이 외면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물과 빛과 공기일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가장 알맞은 상태로 어우러진 것이 소금입니다.
한 줌의 소금에는 바다였던 기억이 있고,
햇살의 살이 있고,
바람의 정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금은 단순한 광물이 아니라,
신이 주신 가장 맛있는 보석입니다.
 

"소금 맨들앙 쇠에 실렁 이 모을 저 모을 댕기멍 보리도 바꽝 오곡, 조도 바꽝 오곡 했주.
구엄 땅이 물왓이란 비가 오민 농사도 잘 안 되곡 해부난 소금을 안 만들민 살질 못했주."
 
(소금을 만들어 소에 실어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보리도 바꿔 오고, 조도 바꿔 오고 했지요.
구엄 땅이 물왓(비가 조금만 와도 쉽게 물이 괴는 땅)이라
비가 오면 농사도 잘 안 되고 해 버리니까 소금을 안 만들면 살지를 못했지요.)

- 《제주민속유적》 295∼299쪽
 

척박했던 시절,
소금밥을 먹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금빌레의 작은 바위틈마다 박혀 있습니다.
바닷물은 그 좁은 사이를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생멸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그 씀벅거리는 틈에 끼워 놓고 저마다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구엄 앞 소금빌레.
너무나 아름다워 그 아름다움 때문에 죽고 싶다가,
갈라진 데 많은 맨 손으로 오시는 소금을 받는 사람들의 삶에 울면서 살고 싶어지는 곳.
 
그리하여 빌레에 서서 바다를 보는 자들이 죽으려는 마음만을 죽이고
돌아서는 곳이 구엄 앞 소금빌레입니다.
 
 


이대흠
1967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9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