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은 딸이 많아서 동네 사람들이 흔히 우리집을 딸부잣집이라고 부릅니다.
아들을 기다리다가 딸 다섯에 아들 둘 이렇게 해서 7남매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중 제가 막내인데 위로 형 하나와 누나 다섯이 더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저희 집에 조그마한 축사가 생겼습니다.
아버지께서 소를 키우시는 걸 아주 좋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버지께서는 소 키우는 것을 재미있어 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소들을 우리들의 학비며 결혼 밑천으로 생각하시면서 키우셨을지도 모릅니다.
혹시라도 소가 밥을 먹지 않으면 밤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소라는 동물도 사람과 같으니 항상 깨끗이 해주어야 질병이 없이 잘 큰다고 하시며
축사를 말끔히 청소하시곤 하셨습니다.
우리 7남매는 그렇게 소를 아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이제 우리집 누나 넷은 모두 결혼을 했고 막내 누나와 형 그리고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가끔 축사를 우두커니 바라보시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시는 아버지를 봅니다.
"이 소들은 마지막 남은 우리딸 결혼비용 또 우리 아들들 학비 마련할 때 써야지."
아버지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요 근래에 들어와 저희 동네 뒤에선 고속도로 공사로 밤이면 밤마다 폭발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소들이 놀라지 말아야 할텐데" 하시며 걱정을 하셨습니다.
아버지 머릿속엔 늘 소걱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때 저희 집엔 소가 많이 늘어나 송아지를 밴 어미소 두 마리와
아주 큰 어미소 세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 중 두 마리는 한 달 정도 뒤에 출산할 예정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어느날부터 어미소가 밥도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선 어미소가 출산일이 임박해서 입맛이 없는 줄만 아시고
밤낮으로 어미소에게로부터 눈을 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어미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전처럼 밥도 잘 먹고 전과 다를 바 없이 잘 지냈습니다.
출산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자 아버지께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축사를 오가며 어미소를 보살피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어미소가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건강하고 튼튼한 송아지가 아닌 파란 하늘 한번 보지 못하고 그대로 죽은 송아지였습니다.
그 때 시름에 빠진 아버지의 표정이 그렇게도 안타까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죽은 송아지를 안고 나오시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열 달 동안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보살폈던 것이
한낱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씁쓸함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3일 뒤 두 번째 어미소 또한 죽은 송아지를 낳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은 것인지
두 마리의 어미소가 동시에 아파버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분을 참지 못하시고 이 일이 다 고속도로공사 때문이라며
그곳 사무실에 수많은 항의전화와 보상을 요구해 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고치신 아버지는 아픈 어미소 병간호에 더욱 신경을 쓰셨습니다.
이미 두 마리의 송아지는 잃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미소까지 잃어서는 안된다며
지극히 병간호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두 마리의 송아지를 완전히 잊어버리시는 못하신 것 같았습니다.
가끔 두 마리의 어미소를 우두커니 바라보시다
호주머니 속의 담배를 꺼내어 피우시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도 착잡해졌습니다.
고생해서 낳은 송아지가 그것도 한꺼번에 두 마리씩이나 잃었는데 그리 쉽게 잊혀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빨리 잊으려고 부단한 애를 쓰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다섯 마리를 키우려니 너무 힘이 든다며
집에 있던 큰 어미소 세 마리를 느닷없이 시장에 팔아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팠던 어미소 두 마리는 팔지 않으셨습니다.
그건 지금 팔아버리면 값도 나가지 않을뿐더러 병이 많이 나서 더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두 마리의 죽은 송아지가 아버지 마음속에 큰 부담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또 다른 송아지를 잃기 전에 내다 팔아버린 것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지극한 병간호로 인해 어미소 두 마리는 기력을 되찾아 전처럼 식욕이 왕성해졌습니다.
그리고 두 마리의 어미소는 또 한번 송아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미소에게 열 달 동안 지극한 정성을 다해 보살펴주고
잔병이 없도록 항상 깨끗이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런 와중에서도 항상 마음을 편히 갖지 못하셨습니다.
저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항상 긴장되고 초조한 모습이셨습니다.
아버지뿐 아니라 저희 식구 모두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떨쳐버리려고 노력했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만 하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나보다도 더 많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후 열 달만인 올해 5월, 어미소 두 마리는 모두 건강한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첫 번째 어미소는 귀여운 암송아지를 낳았으며 두 번째 어미소도 5일만에 역시 암송아지를 낳았습니다.
물론 두 어미소 모두 건강하게 말입니다.
만약 이번에도 저번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아버지께서는 너무나도 큰 실의에 빠졌을런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다시는 소를 키우지 않겠다며 남은 어미소 두 마리마저 팔아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건강한 송아지와 어미소 모두가 너무나도 귀여워보이고 고맙기까지 합니다. 두 달이 거의 지난 지금 저희 집 조그만 축사에는
두 마리의 송아지가 어미소의 젖을 먹으며 마음껏 뛰놀고 있습니다.
그 두 마리의 송아지가 뛰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환한 아버지의 웃음이 내 눈에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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