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날아오는 친구들의 청첩장은 저를 더욱 외롭게 합니다. 여자로 태어나 아름다운 사랑을 해보고 싶은 바램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저에게만은 감히 꿈꾸는 것조차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운명이라고 스스로 타일러보지만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한쪽다리가 짧은 흔히 말하는 절름발이입니다.
그러나 저는 학교생활, 직장생활을 이어오면서 더욱더 밝고 쾌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열등감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며칠씩 열병을 앓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저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큰 문 앞에서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열등감이 또 다시 고개를 든 것입니다.
성하지 못한 외모에 대한 열등감은 살아갈수록 저를 작게 만들고 자신감 없게 만들어갔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저는 끝이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었습니다.
끝내는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를 떠나보내야만 했습니다.
저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그의 솔직함이 만남을 지속시켜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처음 사람에게 외모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알았습니다.
다른 여자들처럼 당당하게 그 사람 앞에 서고 싶었는데 그것은 저의 지나친 욕심이었나 봅니다.
그 일이 있고부터 심한 우울증과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제게 처해진 현실이 싫고 이렇게 태어나게 한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저를 병원에 데려가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혹시 수술로써 교정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병원 문턱은 가보지 않고
아예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던 터였습니다.
그날 아버지께서는 저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라는 말씀과 함께
수술이 안 된다고 하여도 실망하지 말라며 저의 등을 토닥거려 주셨습니다.
다리를 고치기 위한 한 가닥 희망을 안고 그동안 부어둔 적금을 해약해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을 마친 다음
의사 선생님이 내린 병명은 선천적 고관절 탈골이었습니다.
수술이 가능하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결국 저는 입원을 하였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4시간 30분 동안의 대수술을 끝내고 마취에서 어렴풋이 깨어났을 때
온 식구들이 나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빙긋 웃어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다리 길이를 맞추기 위해 무거운 추를 매달고 물리치료를 받을 때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자처했는지 후회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몇 개월 동안의 병원생활은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두 살배기 어린 아기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며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인생을 보았습니다.
병에 걸린 부모에 대한 효도,
부모가 아픈 자식에게 쏟는 사랑도 보았고,
고부간에 피어난 애틋한 사랑과 형제간에 아껴주는 마음도 보았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그 모습은 한결같이 아름다움,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고통스런 병이 인간에게 절망만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서로 간에 감싸 안는 사랑도 함께 준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차츰 지난 날 제가 가졌던 열등감이 엷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같은 병실에 같은 또래의 친구가 들어왔습니다.
그 친구도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는지 두 다리가 많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친구도 나와 같은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좀 친해졌을 무렵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너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와 같은 상황이면 수술도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엷은 웃음을 띄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부끄럽기도 하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자기가 가진 불행이 제일 큰 것으로 생각하고 절망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깊이 생각하면 "아! 그것이 아니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는 것을 저는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금도 아직 회복이 덜 되어 불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처럼 겨울이라고 스키는 못 탈지언정 외출마저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다리에 아직 평형감각이 없어서 길을 다니기도 어렵고 버스를 탈 때는 더 힘이 듭니다.
그래서 가급적 밖에 나가지 않다보니 창밖의 세상이 전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불편함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일이지만 이겨내리라 다짐합니다.
며칠 전에 전화 한 통화를 받았습니다.
어떤 아주머니였는데 저와 비슷한 딸이 있다며 수술을 시켜야 할지 판단이 잘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딸에 대한 안쓰러움이 목소리를 통해 진하게 전해왔습니다.
"나의 부모님도 저런 심정이었겠지"라고 생각하니 철없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그 과정이 너무나 힘이 들고 수술한다고 정상인처럼 다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웬만하면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그 딸에게 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본인의 의사와 의사 선생님의 조언도 잊지 말라고 전해드렸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필요한 것은 수술보다는 자신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남의 시선보다는 내가 내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번 더 저에게 다짐해봅니다.
"좀 더 당당해지리라. 타인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고통과 절망을 치유하는 특효약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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