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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내 마음의 풍차
바가지 | 추천 (0) | 조회 (420)

2011-02-20 01:52

 


마취제를 맞고 축 늘어진 아이를 생전 처음 보는 인턴에게 넘겨주고 수술실 문을 닫는 순간,
내 어깨 위엔 "운명"이라 불리는 형체도 알 수 없는 공포가 털썩 내려 앉았다.

왜?
왜?
 
수많은 의문이 가슴을 짓눌러 사람에, 세상에, 마음의 빗장을 닫아 걸고 자학의 늪으로 빠졌다.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고 그래서 더욱 예방에 신경을 썼고,
"설마"라는 심정으로 열달을 넘기면서 드디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그 기쁨도 잠시,
딸애는 선천성 내번족이란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오른쪽 발이 힘없이 안으로 휘어져 있었다.
눈 앞이 캄캄해지는 절망,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그외 어떤 말로 그 심정을 다 얘기할 수 있을까.

수술을 하면 괜찮을 거라는 의사의 위로도 소용없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나는 장애인 재활협회에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갖가지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며 그들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함께 해왔다.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 상처 입은
그들의 가슴을 열어 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나는 당신들을 이해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입장과 말 못하는 심정을 대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모든 말들은 위선에 가득찬 나의 알량한 자만심이었다.

여느 장애아를 둔 엄마가 다 그렇듯,
우리 애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죽기보다 인정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래서 수술을 해서 걸을 수는 있더라도 정상인과 똑같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는 냉담한 의사의 말은 그 때까지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여지없이 짓뭉개버리고 말았다.

피해가지 않으려면 길은 오직 하나,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인정하고 감추지 않는 것 뿐이었다.

남이 아닌 내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을 때 부모의 심정이란 것은
정말 같은 처지의 사람이 아니고선 그 고통을 다 알 수 없고
그 절망의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나 또한 장애아의 엄마이기 이전에는 너무나 쉽게 얘기했었다.

"이겨 내세요"
"세상에 대해 마음을 여세요"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하기 좋은, 허울 좋은 말잔치였던가, 허위였던가.

그나마 많이 봐서 어느 정도 장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던 내게도
내 아이의 장애는 청천벽력이었고 세상을 등지게 만들었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장애아를 안게 된 엄마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인정하니 차라리 편했다.
감추지 않으니 마음과 행동이 자유로웠다.

"그래, 이것이 내 아이와 나의 운명이라면 피해가지 말자.
진정한 용기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극복해 나가는 것일 거야."

"아가야,
다소 네 몸이 불편해도 그 정도 신체적 장애는
이 험한 세상의 온갖 모진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네가 마음을 열면 오히려 신체적 장애는 널 더욱 건강하고 강한 사람으로
더 큰 어려움도 굳건히 이겨나갈 힘을 줄거라고 엄마는 믿는단다.
우리 힘을 내자."

딸애는 수술 후 보조기를 착용하고 걸음마 연습을 시작하면서 뒤뚱뒤뚱 걷다가 넘어지고,
일어서고,
또 기우뚱 넘어지고,
일어서는 힘든 생활을 9개월이나 했다.

두돌이 다 된 지금은 그렇게 쉽게 넘어지진 않지만 여전히 반듯하게 걷지 못한다.
성장기가 끝날 때까지 보조기를 착용해야 하며 다시 재발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는
항상 가슴 저 밑바닥에서 불안이라는 두려움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그러나 내가 정작 두려운 것은 아이의 불편한 다리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눈이었다.

장애아란 낙인이 우리 아이를 몸과 마음이 다 불편한 장애아로 단정짓고,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동정할까봐 그것이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지금 난 장애인부모회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나와 같은 장애아 엄마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일어서서 힘을 모아 만든 단체이다.
어쩌면 이것 또한 나의 정해진 운명이고 천직일지도 모른다.

진정 장애인을 위해,
그들의 정당한 권리 회복과 복된 삶을 위해 함께 하라고 신은 딸애를 내게 선물로 주셨나 보다.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안락한 생활에 묻혀 하루하루를 소비해 가던 내게 딸애는 다시 세상으로,
장애인들에게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직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울타리에 속하지 않는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통합을 위해
나는 온몸 부딪혀 그 편견의 벽을 깨 나갈 것이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높은 문턱을 우리애들이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밟고 또 밟고, 닳도록 밟아 그 턱을 낮출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하는 걸음 걸음이 이 땅 전체 장애인의 그늘진 삶에 한줌 따뜻한 햇살이 되고
지금 나의 작은 실천이 내일 우리 아이들의 밝은 웃음으로 꽃필 수 있다면
나는 잠시도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내 삶의 지표가 되어준 내 딸.

안주하던 생의 한가운데서 나를 일으키고 끌어서
저만치 가시밭길에 나를 데려다준 내 인생의 원동력,
내 마음의 풍차.

세찬 바람을 만나면 더 잘 돌아가는 풍차처럼
세상의 바람이 거칠고 험할수록 내 마음의 풍차는 더욱 잘 돌아갈 것이다.
 

팽, 팽, 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