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ID/패스
낙서 유머 성인유머 음악 PC 영화감상
게임 성지식 러브레터 요리 재태크 야문FAQ  
[퍼온글] 그리운 아버지
바가지 | 추천 (0) | 조회 (354)

2011-02-21 01:59

 


하늘이 유난히 맑고 높다.
어느새 가을인가 보다.
아버지가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계절인데 저 하늘나라에서나마 가을을 느끼고 계시는지.

보고싶은 아버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충격도 컸었고
지금도 내 가슴 한 켠에는 온통 시린 마음 뿐이다.

아버지는 미남에다 철도 공무원으로 여자에게 인기가 많았다는데
엄마를 잘못 만나 그 좋은 직장도 그만두시고 술을 배워 인생을 너무나 아깝게 사셨다.
엄마라고 해봐야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엄마는 술집 여자였는데,
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부모와 가정과 직장까지 다 버리고 엄마랑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태어난 아이가 나였는데 엄마가 나를 버리고 도망가는 바람에
나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리고 엄마를 찾다가 지친 아버지는 마침내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매일 술에 취해 살았기 때문에
자연히 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네 에미 때문에 내 자식이 저렇게 되었다.”며 구박을 하셨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나만 보면 술을 드셨다.
그리고 제 정신일 때는 나를 예뻐해 주셨지만 술이 취하면 이유없이 나를 때리곤 하셨다.
술을 안 드실 때는 그렇게도 좋은 분이 술만 드시면 딴사람이 되어버렸다.
집안살림을 다 부수고,
동네 사람과 싸우고…….

술이 정말 싫었다.
왜 술만 마시면 저렇게 변하는 건지.
나는 이 세상 모든 술을 다 없애 버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 삐뚤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두 번 있는 인생도 아닌데,
인생을 너무 일찍 포기해버리는 아버지가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난하고,
엄마도 없고,
술주정 심한 아버지.
나는 이런 컴플렉스를 벗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고
그 덕분에 항상 우등생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공부가 재미있었고 하고 싶었다.
남들은 공부를 못해도 좋은 고등학교에 보내려고 부모님들이 극성인데,
아버지는 나의 진학은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으며,
나 또한 아버지 곁을 떠나고 싶어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산업체 부설학교에 진학해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내심 원망했기에 떠나기만 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집에 혼자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계속 편칠 않았다.

어느 비오던 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영미야, 배고프다. 500원만 주라.”
 
하시며 경비실로 날 찾아오셨다.
초췌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아버지 곁에는 내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도 직장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어려운 생활이었다.
여전히 아버지는 직장도 안 나가고 술만 드셨고,
내가 조그만 회사에 다녀 번 돈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는데,
그 와중에 동네 사람과 시비가 붙어 아버지는 교도소에 가게 되었다.
나는 이런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기 싫었기 때문에
야간교대 때마다 매일 면회를 가서 사식을 넣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는 부족한 잠으로 꾸벅꾸벅 졸다가 매일같이 혼나기 일쑤였다.
하루하루가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이고 내가 자식이니까 참고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그렇게 힘든 나날들을 견뎌냈다.

그러던 중에 고모부가 김천에 있는 어느 기도원을 소개하여 한동안 아버지도 안정되었고
나도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교 교무실에서 일하면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버지는 기도원을 나와서 다시 술을 드셨고
나를 찾아 와서 같이 살자고 하셨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이제 다시 반복될 악몽이 두렵고 싫어진 나는
아버지를 그만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날마다 아버지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편치 못했지만
술드시고 행패부리는 아버지 때문에 이사다닐 걱정을 하니 끔찍하게만 생각되어질 뿐이었다.
친척들도 다 아버지를 외면했는데 자식인 나조차도 외면해 버리고 만 것이다.

아버지는 혼자 외로이 돌아가셨다.
따뜻한 집도 아닌 서늘하디 서늘한 곳에서.
분명 날 찾으셨을텐데…….

돌아가시기 얼마전에도 날 찾아오셨는데 나는 그냥 못본 척 지나쳐 버렸다.
후회하고 다시 그 자리에 왔을 때 아버지는 이미 가고 없었고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일이 이렇게 두고두고 마음 아플줄 그땐 왜 몰랐을까.
 

아버지의 제삿날이 다가온다.
그래서 이맘때면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그리움으로 가슴이 시리다.
그때 힘들고 괴롭더라도 아버지와 같이 있었어야 했는데,
지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돌아가시고 안 계신 것을.
임종조차 못본 것을.


술만 안 드셨던들,
아니 술주정만 안 하셨더라면 아버지와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부자도 필요없고,
단지 부모님이 계신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서 사랑받고 자랐으면 좋겠다.
길게 산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으로서는 그것이 최상의 행복인 것 같다.

그리고 끝으로 혹시나 한 번도 찾아보지 못한 엄마를 이 글을 통해서나마 찾아보고 싶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이라곤, 엄마가 마산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나의 신상을 적자면 할머니가 계셨고,
고모 두 분 계시고, 아버지는 박자, 영자, 태자로 김천 분이고, 철도 공무원이셨다.
그리고 나는 B형에 73년 4월 24일생이다.

이런 내용으로 무슨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적어보았다.
실낱같지만 희망을 갖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아버지! 하늘나라에서나마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세요. 저를 용서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