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저는 사람을 믿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진지한 말을 해도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사람을 의심하고 믿지 않는 게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십이 년 전 제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습니다.
몇 개월에 걸친 어머니의 장기 입원으로 끝없이 들어가는 병원비 때문에 대출도 받고,
결혼하여 분가한 오빠와 언니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집에서 대학 입학금을 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등록금과 용돈을 벌기 위해 저녁마다 아르바이트를 했고,
새벽 잠을 설쳐 가며 중학생 과외도 했습니다.
여름 방학 때는 아침, 저녁으로 과외를 하고 낮에는 한 회사에서 생산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 일을 하며 만난 언니가 있었습니다.
“많이 힘들지? 그래도 꿋꿋하게 잘하네.”
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피곤에 찌든 저에게 얼마나 많은 힘이 됐는지 모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언니는 퇴근 후에 폐를 끼치기 싫어서 그냥 간다고 하는 저를 굳이 자신의 자취방으로 데려가서는,
밥도 해주고 맛좋은 울릉도 오징어를 구워 주기도 했습니다.
친언니처럼 저를 일일이 챙겨 주던 그 언니가 하루는,
시골에 있는 어머니가 경운기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돈을 부쳐야 하는데 보너스와 월급을 모두 도난당했다며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혹시 돈이 있으면 삼십만 원만 꿔 달라는 말을 어렵사리 꺼내는 언니를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돈을 빌려 주기로 했는데 사정상 삼십만 원은 다 주지 못하고 우선 가지고 있던 이십오만 원을 빌려 주었습니다.
언니는 고맙다며 일주일 뒤에 꼭 갚겠다고 했습니다.
“고맙긴 뭘. 그나저나 언니 어머니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헤어진 뒤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늦어지는 거겠지."
하지만 이 주일이 지났는데도 언니는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속으로 걱정하며 언니의 자취방으로 찾아갔는데 마침 주인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그 학생 이사 갔는데, 벌써 보름 넘었지.”
아주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사람에게 처음으로 배신을 당하던 그때의 심정은 비참 그 자체였습니다.
사기당한 돈도 아까웠지만 믿고 따르던 언니의 배신이 그렇게 가슴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연락이 오겠지 위로하며 살았습니다.
그 동안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했습니다.
첫 달부터 한 달에 삽십이만 원씩 내는 사백만 원짜리 적금을 들었습니다.
벅차긴 했어도 직장이 끝난 뒤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었습니다.
드디어 일년 뒤에 사백만 원이라는 거액이 생겼습니다.
왜 그렇게 든든한지 저는 뿌듯한 마음에 항상 싱글벙글이었습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 하루는 제가 살고 있던 다세대 주택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몇몇 친구들을 불러 저녁을 샀습니다.
“짠순이로 소문난 네가 갑자기 웬 일이냐?”
“돈이 좀 생겼거든.”
그런데 얼마 뒤 그중에 절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가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는 평소에 제 옆에서
“밥 좀 제때 챙겨 먹어라, 애가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보이냐”
하며 어깨 좀 펴라는 둥 시어머니처럼 잔소리가 심한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의 깊은 속을 알기에 저는 그 잔소리를 들을 때면 오히려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뭔가 할 차례군."
그 뒤 저는 친구에게 밥도 해주고 반찬도 사다 주었으며,
친구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에 다니는 게 안타까워 가끔 이삼만 원씩 택시비를 하라며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지지리 복이 없는 친구였습니다.
동생이 갑자기 입원하게 되어 자신이 살던 집의 전세금을 빼서 급히 보내려 했는데,
주인이 돈이 없다며 기다리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 그때 적금 탄 것 중에서 삼백만 원만 꿔 주면 안되니?”
잊혀져 가고 있던 그 언니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얘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발뺌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 뒤에 창원에 있는 언니네 집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간 김에 이삼 일 정도 머물며 푹 쉬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그 친구의 방은 비어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고향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두 번씩이나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는 건지 하도 분통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더군요.
한 번 당하고도 또 미련하게 돈을 빌려 준 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나중에는 평소 그 친구가 잘해 주었던 것들이 모두 돈을 꾸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뒤에도 또 한번 울어야 했습니다.
사기당한 삼백만 원이 아까워 빨리 돈을 마련하고자 계를 들었습니다.
신중히 선택하여 두 구좌에 열심히 돈을 부었는데, 일년이 지난 어느 날 계가 깨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사람을 믿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믿고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돈 때문에 세 번씩이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보니 사람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한 남자의 아내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된 지금
저는 그들을 용서했고 다시금 주위 사람들을 믿고 그들과 정을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에게는 시간이 약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씩은 씁쓸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아름답지 못한 세상의 한 단면을 너무 일찍 배운 탓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