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둘의 나이에 하루하루 병마와 씨름하고 있는 소녀입니다.
저는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지금껏 어머니의 얼굴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어머니를 느껴 본 것은 고작 뱃속에서의 8개월이 전부입니다.
제가 8개월 만에 세상 구경을 했을 때 어머니께서는 임신 중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주위에서는 산모가 위험하므로 아이를 포기하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 생명보다 태어나지도 않은 자신의 아기를 더 사랑하신 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분이셨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아버지는 단 한번도 어머니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사진조차 볼 수 없게 하셨습니다.
주위 분들에게서도 어머니에 대한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말씀해 주시지 않는 분들의 심정을 잘 알 수 있었기에 저는 죄인처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저에게 그것은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제가 열두 살 때 새어머니가 들어오셨는데, 제게 참 잘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자꾸 비뚤어졌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혼자 따로 아파트를 얻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맘껏 하고 싶은 대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가 몸이 많이 상했습니다.
원래 위궤양을 앓고 있었기에 그냥 그렇게 아픈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너무 아팠고 저의 몸은 점점 야위어 갔습니다.
집이 그립더군요.
집에 갔더니 아버지께서 저를 보고 놀라서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병원에 가자.”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위에 종양이 생겼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참으로 아득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 겨우 스물이었으니까요.
왜 저한테 그런 병이 생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을 붙들고 울먹였습니다.
“선생님, 그럴 리가 없어요. 다시 검사해 주세요.”
저는 위선자였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몸이 야위어 가고 밥을 먹지 못할 때 불치병일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했었습니다.
"살기 싫은 세상 차라리 그런 병에 걸려 죽어 버리는 게 낫지."
하지만 막상 그런 결과를 통보 받고 나니 끔찍했습니다.
불현듯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조기에 종양을 발견해서 75퍼센트 가량 잘라 냈다고 하시며 제게 당부하셨습니다.
“방심하면 안돼요. 암은 워낙 완치가 잘 안되는 병이기 때문에…. 제 말 명심하세요.”
“또 잔소리세요. 어련히 알아서 잘하려구요. 걱정하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
저는 힘겨운 수술과 치료를 끝내고 그렇게 웃으며 퇴원했습니다.
그리고는 집 근처의 사찰로 들어가 두 달 가량 요양했습니다.
그때는 아프지 않아서 참으로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제가 학교를 그만두도록 서류 정리를 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릴 적 그림을 좋아했던 저는 커서 꼭 미대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
렇게 소원하던 미대에 어렵게 들어갔는데,
그런 모습을 빤히 지켜본 아버지께서 어쩌면 제게 한마디 의논도 없이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때 당시 병이 나았다고는 하지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따지고 보면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이 아버지의 잘못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를 그만두는 게 너무 슬펐던 저는 아버지에게 화살을 돌렸습니다.
저는 날로 포악해져 갔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뒤늦게 큰집 쪽에 암이 유전이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든 게 다 아버지 탓이야."
아버지가 너무 미워 얼굴조차 보기 싫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께서 저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이게 네 에미 사진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분이 나를 낳아 주신 친어머니였습니다.
사진 속의 어머니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얘야, 아버지도 불쌍한 분이시다. 네가 그분을 이해해야 해.”
그날따라 아버지는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습니다.
잠시 후 저는 울면서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소리 없이 제 손을 꼬옥 잡으셨습니다.
그 뒤로 저는 얼른 나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열심히 치료받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서 말입니다.
아버지와 화해하고 나니 마음도 참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행복한 저를 시기하는 듯 저의 몸에선 다시 암세포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프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제 소원이 너무 컸던 걸까요.
왜 제게만 이런 시련이 닥쳐 오는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병원에 재입원했습니다.
열심히 치료받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최선의 길이었으니까요.
저에게는 소원이 있습니다.
머리를 길러서 머리핀도 꽂아 보고 머리띠도 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그렇게 할 때는 아니겠지요.
요즘 집 분위기가 엉망입니다.
오빠는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을 마시고 아버지께서는 담배를 얼마나 많이 피우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저 때문에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합니다.
모두가 제 탓이라고 생각하니 미안해서라도 빨리 나아야 할텐데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저를 사랑해 주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어머니께서 당신이 아프고 제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실 때면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에 아버지께서는 그러시더군요.
“넌, 부모한테 절대 불효하지 마라.”
저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누가 그러더군요.
부모보다 먼저 떠나는 자식은 불효자라고….
곧 수술일이 다가옵니다.
저는 이 수술을 통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가족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그것뿐이거든요.
여러분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