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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국경 놀이
바가지 | 추천 (0) | 조회 (374)

2011-03-02 08:19



강가에 서 있는 나무 아래로 갔다.
아내와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준비해 온 바게트 빵을 꺼내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한국에서 왔죠?”
 
정박해 있던 크루즈 배에서 올라온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서울에 대해서도 알은체를 했다.
사업차 가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라오스에 볼 만한 게 있어요?”

라오스는 이웃나라인 태국처럼 역사가 깊지도 않고 캄보디아처럼 세계적인 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듣고서야 말뜻을 알 수 있었다.

“글쎄요…….
그야 여행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아닐까요?”

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럼 내게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물론 저 메콩 강도, 뜨거운 열대의 태양도, 붉은 황토 길도, 제게는 다 새로워요.
당신들의 아름다운 미소도요.
그렇지만 내가 이번 여행에서 만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이 여행이 끝나갈 즈음 말할 수 있겠죠.”

“하하, 재밌네요. 그런데 두 분은 어딜 가는 중입니까?”

“국경이요.”

“태국 농카이요?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요?”
 

그렇다고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다.
22킬로미터.
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물론 운전대를 잡은 팔뚝이 타들어갈 듯 뜨거운 하늘 아래에서 쉬지 않고 두 시간 동안 달린다면 분명 일사병에 걸리고도 남을 테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언제부터인지 자전거를 타고 국경을 넘는 날을 상상해 왔다.
허리가 잘려 섬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온 나로서는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특별하고 신기한 일이다.

“그럼, 라오스에는 언제 돌아오십니까?”
“오늘이요.”
“네?”
 

대한민국 국민은 15일 동안 비자 없이 라오스 여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이미 10일을 넘어섰고, 앞으로도 20일 가까이 더 머물 작정이었다.
때문에 국경 놀이를 하기로 했다.
메콩 강을 건너 태국의 국경도시 농카이로 넘어가 잠시 있다가 돌아오면 여권에는 또다시 15일간의 체류 허가 입국 도장이 생겨나는 것이다.

국경 놀이가 시작되었다.
라오스에서 출국 도장을 받고 "메콩 강을 사이에 둔 두 나라"를 이어주는 "우정의 다리"를 달렸다.
버스를 탄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는 것을 보아 우리 부부가 근래 보기 힘든 장면을 연출해 주고 있음이 분명했다.
 
잠시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잘 달리던 버스와 트럭들이 어쩌자고 줄줄이 중앙선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집단 담력 테스트라도 하는 중일까, 아님 너무 더워 머리들이 어떻게 된 걸까.
그러나 어느새 "우정의 다리" 절반 지점에 도달해,
일본이나 영국처럼 자동차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위치한 태국 땅에 들어서는 순간,
차들이 차선을 바꾼 것뿐이었다.

국경 놀이는 계속되었다.
3개월 동안이나 체류할 수 있다고 허락한 태국의 입국 도장을 받고 라오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편의점 "세븐 일레븐"을 잠시잠깐 시찰한 다음,
한적한 주택가의 나무 그늘에 누워 태국의 하늘을 한 시간쯤 바라보다가 다시 태국 출국 도장을 받고 우정의 다리를 건너,
물론 이때 중간 지점에서 중앙선을 매우 합법적으로 침범하여 차선을 바꾸고서, 라오스 땅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이번 여행에서만 두 번째인 라오스 입국 도장을 "쾅" 하고 받음으로써 마침내 오늘의 임무인 국경 놀이를 다 끝마칠 수가 있었다.
 
 
 


김향미, 양학용님 여행작가
결혼 10년을 맞아, 배낭을 꾸려 47개국을 967일간 누볐다.
그 여정을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와 《여행자의 유혹》(공저)에 담았다.
지금은 여행작가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여행학교"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