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도로변에 앉아 마냥 기다리자니 덥고 지루하고 힘들었다.
그동안 그 정류장에는 짐 보따리와 닭과 사람들을 가득 실은
성떼우(중소형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이동 수단)가 가끔씩 멈추어 섰다 떠나곤 했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도시에 내다 팔려는 걸까,
양식을 마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까.
쌀이나 어떤 곡식이 들어 있을 가마니들을 하나 둘 셋이나 싣고 어린 남매 둘을 먼저 태우고 마지막으로 젊은 엄마가 성떼우에 올랐다.
길 건너편에서 1시간 가까이 우리처럼 기다리고 섰던 이들이었다.
손을 흔들어도 수줍게 웃기만 한다.
그들이 떠나고도 1시간이 더 지나서야 루앙프라방 행 버스가 왔다.
길은 머리가 어지럽도록 아름다우면서도 구불구불 속이 뒤집으면서 험하게 이어졌다.
좀처럼 차멀미라곤 하지 않는 내 뱃속에서 위급 신호를 보내기 시작할 즈음, 버스는 어느 마을에 멈춰 섰다.
삼거리를 중심에 두고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인근 산골에서 들고 왔음이 분명한 채소랑 과일들이 학교에 처음 들어간 초등학생들 마냥 길을 따라 삐뚤빼뚤 앙증맞게 줄을 섰다.
몇몇 사람들이 내렸고, 그사이 대나무 바구니를 머리에 인 아이들이 버스에 올랐다.
바구니 속에 담긴 것은 삶은 옥수수나 바나나였고,
그도 아니면 아이스박스에서 막 꺼내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힌 음료수였다.
차창 밖에도 대나무 바구니를 머리에 인 여인들이 서 있었는데,
어쩌자고 그중 한 여인이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재빨리 달려왔다.
그러고는 뭔가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데, 바나나 잎에 싸인 어린 호박순이었다.
순간, 난감했다.
"집 떠난 여행자가 호박순을 사다가 어떻게 하라는 거지?
혹 라오스에선 생으로도 먹나?
어떡해,
사? 말아?"
잠시 갈등하는데, 그녀가 "풋" 웃었다.
쑥스럽고 미안해하는 얼굴빛을 보아하니 나를 현지인으로 오해했던 모양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거울 볼 일 없어 모르긴 해도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수염까지 자랐으니 그녀의 오해가 무리도 아닐 것이다.
루앙프라방 가는 버스는 많고 많았다.
방비엥에 있는 여행사마다 외국인 여행자에게 투어리스트 버스표를 팔고 있었다.
우리가 탄 로컬버스에 비해 1~2만 낍, 우리 돈으로 2~3천 원을 더 주면 숙소 앞으로 픽업까지 하러 온다.
그럼에도 어떤 여행자들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 로컬버스를 타기 위해 도로변에
가방을 부려 놓고 몇 시간씩을 기다리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자가 여행하는 시공간과 현지인이 살아가는 시공간이 따로 존재할 때가 있다.
그래서 더 고생스럽고,
더 많은 시간이 들고,
때론 비용도 더 많이 들지만 로컬버스를 타게 된다.
운전사가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아이들은 어느새 머리에 인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은 채 뛰어놀고,
자칫 여행자에게 어린 호박순을 팔 뻔했던 여인은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여행이란 잠시라도 현지인이 되어 보는 거다.
김향미, 양학용님 여행작가
결혼 10년을 맞아, 배낭을 꾸려 47개국을 967일간 누볐다.
그 여정을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와 《여행자의 유혹》(공저)에 담았다.
지금은 여행작가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여행학교"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