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비오는 날이면 왜 이모가 보고 싶어지는 걸까?”
조카아이, 아니 내딸 미란이의 편지를 받아본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남에게 드러내놓고 내 딸이라고도 말하지 못하고 이모로 불리는 나의 이 쓸쓸함은 철없던 시절 한 남자를 사랑한 대가다.
가난한 집안에 맏이로 태어난 나는 중학교만 졸업한 뒤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다.
몇 년 동안 집안일에 매달리다 보니 라디오가 유일한 친구였는데, 특히 나는 클래식 프로를 애청했다.
엽서를 띄워 음악을 듣는 즐거움에 빠져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연과 함께 희망곡을 적어보내던 나는
다른 애청자들과도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 가운데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그는 날마다 편지를 보내왔다.
일 년 가까이 그와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어느덧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학창시절에 스케이트를 타다가 크게 다쳐서 한쪽 다리가 약간 짧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픔을 알게 되자 오히려 그와 남은 인생을 함께 하고픈 간절함이 생겼다.
그 뒤 첫 만남을 가졌는데 나는 그에게서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편안함을 느끼며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를 만나보신 부모님은 장애인에게 딸을 줄 수 없다며 심하게 반대하셨다.
그에게서 편지가 올 때마다 모두 숨겨놓으시고는 그만 연락하라고 하셨다.
그리움에 못견디던 나는 가을걷이가 끝나자마자 사촌언니네 놀러간다는 핑계를 대고 그를 만나러 갔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신 그의 어머니는 새봄에 결혼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촌언니에게는 집에 간다며 거짓말을 한 뒤 그의 집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마지막 밤을 그와 보냈다.
그런데 석 달 뒤 나는 덜컥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혼자 며칠 밤을 고민하다가 그와 의논한 끝에 그의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매우 기뻐하셨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된 우리 부모님은 당장 병원에 가자고 하셨다.
하지만 결국 눈물로 용서를 빌며 고집부리는 딸에게 부모님은 두 손을 들게 되어
나는 가을에 결혼 날짜를 받아놓은 채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결혼식을 두 달 앞두고 그의 어머니께서 고혈압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나는 시댁으로 들어가 사람도 못 알아보는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했다.
그 뒤 결혼식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시누이의 등살에 밀려 잠시 친정에서 쉬게된 나는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 그에게 위로의 음악을 띄웠다.
그런데 그 주소를 듣고 시댁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살고 있던 한 아가씨가
그에게 자주 연락을 하더니 내가 시댁으로 돌아온 뒤에도 두 사람은 몰래 만나곤 했다.
그녀와 헤어질 것을 강요하자 그는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싫다며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나는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세 달 동안 친정에 머무르면서 고민하던 나는 한번만 참기로 마음먹고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 사이 그들은 더욱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직접 그녀를 만났지만 그녀도 그와 헤어질 수 없다고 했다.
"그렇구나! 나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 혼자 괴로워했구나…."
결국 1년 뒤 나는 그 사람과 이혼을 했다.
그리고 부모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죄스런 마음으로 어린 딸아이를 안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여섯 살 즈음되자 부모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나의 재혼을 서두르셨다.
나는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고 다시는 그런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피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언니가 찾아왔다.
미란이를 보더니 양녀로 삼고 싶다고 했다.
언니는 결혼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었다.
언니와 형부가 아이를 워낙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미란이의 장래를 위해서도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미란이는 다행히 언니네 집에서 잘 적응하는 듯 했다.
몇 달 뒤 언니네 집에 가게 되었는데, 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딸아이를 보고 반가워서
“미란아!”
하고 불렀더니 “어? 우리 큰 이모 왔네” 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몇 해가 지나고 나는 재혼을 했다.
미란이의 중학교 졸업식 날 꽃다발을 들고 축하해 주러 갔는데,
나랑 잔디밭에 앉아 사진을 찍으려고 내 어깨에 손을 얹던 미란이가 불현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모, 나 이모가 누군지 알아…”
“그럼, 왜 진작 말 안 했어?”
“응, 엄마 아빠도 좋으신 분들이고 이모도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데 뭐.
그리고 난 아무렇지도 않아 내 걱정은 하지마.”
한없이 고마운 아이,
가슴 한구석으로 이 엄마를 원망도 했으련만 티내지 않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고 있는 딸아이.
그 아이가 벌써 시집갈 나이가 다 되어 간다.
한때는 내 인생에 걸림돌이었던 그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사람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내 곁엔 고운 숙녀로 반듯하게 자라 준 미란이가 있음으로 얻는 기쁨이 더 크니 고마운 마음마저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