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처음 여행을 떠난 것은 몇 년 전이었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짐을 챙길 필요가 없다고 하였지만, 나는 온갖 것을 다 준비했습니다.
여행에는 항시 예측 불허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종 먹을거리는 물론이고 날씨가 추워졌을 때를 대비한 옷가지며,
의약품이나 자전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조치할 수 있는 각종 공구까지 준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났을 때 깨달은 것은 그렇게 배낭에 많은 것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주는 섬 전체가 관광지인지라 어지간한 곳에는 숙박 시설이 있고, 일정한 거리마다 마을이 있고 가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응급조치에 필요한 것만 챙긴 채 떠나도 어렵지 않게 여행을 마칠 수가 있습니다.
제주의 봄날은 자전거를 타고 다녀 보아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 전체의 둘레가 200Km쯤 되므로 하루만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어지간한 곳까지는 다녀올 수가 있습니다.
자동차로 떠나는 여행은 목적지에는 빨리 다다를 수 있지만, 도중에 만나는 많은 풍광을 놓치게 됩니다.
또한 걸어서 하는 여행은 땅바닥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갈 수는 있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하지만 자전거는 심하게 느리지 않으면서도 언제든 세울 수 있으므로,
제주 곳곳에 숨어있는 비경을 놓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눈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바람이 센 제주에서는 겨울에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여름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여름엔 너무 더워서 무리를 하면 몸이 손상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철은 아무래도 유채꽃 향기가 자전거 바퀴에 가볍게 부서질 수 있는 봄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가 봅니다.
제주의 길은 바다로 향하거나 산으로 향해 있습니다.
바다는 사면이 바다인지라, 낮은 곳으로 가다보면 자연히 어느 바다엔가 닿습니다.
산은 섬의 중심이 한라산이라서 오르막을 자꾸 오르다보면 백록담 꼭대기에 닿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산꼭대기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경사도 심하거니와 마땅한 자전거 도로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주에서 자전거 여행을 한다는 것은 바다를 한쪽 옆구리에 끼고
다른 쪽 옆구리에는 산을 품어 가면서 섬을 도는 것입니다.
자전거로 섬을 돌 때는 되도록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좋습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되면 급경사를 상당히 만나게 되지만,
시계 방향으로 가면, 오르막이 평지와 거의 비슷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완주할 수 있습니다.
앞바퀴는 부드러운 해풍에 벌써 저만치 앞서 가려 하고,
뒷바퀴는 잔설이 남아 있는 백록담을 끄집고 가려 합니다.
매화는 벌써 쉬었지만, 올 봄은 늦어서 목련은 이제 발톱을 내밀었습니다.
우리의 초가지붕을 닮은 오름의 봉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정겹습니다.
지난겨울의 바람을 이겨낸 제주의 집들은 낮게 웅크리고 있습니다.
다른 지방보다 짧은 처마를 한 제주의 집들은 이를 앙다문 것처럼 보입니다.
파도를 만들고 온 바람이 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파도를 만들려 합니다.
해풍은 뭍에 닿아서도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봄이어도 바람이 거세어서 체감온도는 차갑습니다.
더구나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았던 사람은 근육이 땅기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전거 여행은 바람과 추위와의 싸움임과 동시에 자기 한계와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섬은 바다 가운데 떠 있는 한 척의 배입니다.
늘 파도에 흔들리고 바람이 불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파도의 난간을 디디며 살아온 섬사람들은 아무리 무서운 폭풍이 몰려온다고 해도 담담히 준비를 하며,
그것을 극복할 의지를 가집니다.
그래서 섬사람은 더 건강해 보이고, 위기가 오면 합심하여 위기를 극복합니다.
우리네 삶도 안락함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부딪히고 이겨 내면서 사는 맛 좀 나야 하지 않을까요?
이대흠
1967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9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