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머니들은 그 한 많은 세월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나는 지금 친정에서 남편 없이 네 살 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그 동안 하늘에 원망도 해 보고 많이 울기도 했다.
동갑내기인 남편을 처음 만난 건 대학 2학년 때였다.
남편은 남해안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친 뒤 요리기술을 배우러 서울로 올라온 꿈 많은 청년이었다.
그의 성실한 모습에 반해서 사귀기 시작했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집안의 장녀인 나를 제일 믿고 의지했기에 실망이 크셨던 모양이다.
부모님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나는 집을 나오고야 말았다.
그때 마침 남편이 시아버지 명의로 된 조그만 빌라에서 누나와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나는 우리 두 사람의 노력에 따라 어려운 일도 잘 헤쳐 나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평소 잘 따르던 선배에게 속아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직장을 그만두고 피라미드 조직에 들어가 6개월 동안 합숙하고 나오더니
그나마 적금 부었던 돈도 날리고 단번에 큰돈을 벌 궁리만 했다.
또 이삼 일씩 외박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다행히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생활은 근근이 이어갔지만 차츰 힘에 부쳤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절도죄로 경찰서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식구들도 놀랐지만 이 기회에 정신 차려야 한다며 모두 모른 척했다.
얼마 뒤 집행유예로 풀려 나온 남편은 한동안 직장을 알아 보고 공부도 하는 등 새롭게 살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때 나는 임신한 몸이라 남편이 아버지가 되면 좀 달라질 것 같아 잠시 희망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남편은 다시 절도죄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임신 6개월로 접어든 나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시누이까지 챙기며 혼자서 아기를 낳았다.
시댁 식구들은 어느 한 사람도 시누이를 맡으려 하지 않았고, 만삭이 된 나를 외면했던 것이다.
여기저기 다니며 출산비를 마련했던 나는 당장 끼니를 해결할 돈도 없었다.
친정 부모님께는 남편이 일본으로 요리를 배우러 갔다고 속이고 아이를 맡긴 뒤
시누이를 데리고 지내면서 남편이 출감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2년 가까이 견디자 남편이 돌아왔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한 남편은 직장에 나가면서 안정을 찾는 듯하더니, 또다시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동안 남편만을 바라보며 견뎌 왔는데…."
나는 너무 두려웠다.
다시 되풀이될 생활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더구나 남편에 대한 시댁 식구들의 미움까지 참아야 했다.
또 친정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릴 것이며, 아이에게서 아빠가 떠나가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생각 끝에 나는 남편 대신 내가 죄를 뒤집어쓰기로 결심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경찰서를 찾아갔다.
여자의 몸으로 유치장에 있는 날들은 너무 끔찍했다.
얼마 뒤 초범이고 주부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고 나와 보니,
시부모님도 고마워하는 눈치였고 앞으로 잘 산다면 후회될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남편도 많이 달라진 듯하여 이젠 정말 그를 믿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친정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결혼식을 올리려고 준비하는 몇 달 동안은 조용히 지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식을 두 달 앞두고 습관적인 도벽으로 또 일을 저질렀다.
남편이 밉고 그를 믿었던 내 자신이 저주스럽기까지 했다.
이유야 어쨌든 나도 이미 전과자가 되어 있어 아이에게 더욱 미안했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친정 부모님은 기절하시고 난리가 났다.
친정 아버지는 결혼 소식을 다 알려놓은 상태라 어떻게든 애아빠를 빼내야 한다며
시부모님께 부탁했지만 시댁 식구들은 본체만체했다.
그러나 친정 아버지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여기저기서 푼돈을 빌려서 변호사를 선임하셨다.
한달 만에 남편은 벌금형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리면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생기리라는 또 한 번의 기대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이미 정상으로 생활하기 힘든 것 같았다.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나온 지 일주일 만에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절도죄로 다시 수감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 아이는 시댁에서 옷가지 몇 개만 들고 쫓기듯 나와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친정으로 갔는데, 내가 쫓겨난 사실을 아신 부모님은 화가 나서 시댁을 고소하겠다고 하셨다.
집안끼리 일어난 싸움에서 나는 더욱 상처를 입었고,
세상을 그만 떠나고 싶었지만 아이가 눈에 어른거려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친정살이가 시작된 지 어느덧 9개월이 되어 간다.
처음엔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울기도 하고, 약이 없으면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세상은 내 뜻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절망감에 가슴도 많이 아렸다.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그와의 첫사랑과 나의 소중한 가정을 지키려고 애써 왔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다.
나는 앞으로도 아이 하나를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갈 생각이다.
아빠가 못 보인 삶에 대한 진실함을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