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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천사같은 아이를 품에 안으며
바가지 | 추천 (0) | 조회 (304)

2011-04-06 07:55

 
난 스물다섯 살, 그이는 서른두 살.
시누이의 소개로 만난 우리는 14일 만에 결혼을 했다.
결혼식을 올린 뒤 곧바로 우리나라를 떠나 해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나는,
결혼만 하면 모두 자연스럽게 아기가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러나 1년, 2년… 10년이 지나도록 우리에겐 아기 소식이 없었다.
몇 번 신랑에게 병원에 가보자고 졸랐지만, 때가 되면 생기겠지 하는 마음에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고국에 돌아와 서울 생활을 시작했는데, 드디어 임신을 했다.
임신 5개월이 지나면서 초음파에 나타나는 아기의 손짓 발짓을 볼 수 있었고,
새 천년에는 나도 엄마가 된다는 기쁨에 들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구정 전날 새벽, 진통이 시작돼 다섯 시간쯤 진통을 겪다 병원에 갔는데 양수가 없어 제왕절개로 분만을 해야 했다.
드디어 엄마가 된 것이다.
피부가 하얗고 코가 오똑한 아주 작은 여자아이였다.
신생아는 쭈글쭈글 못생긴 걸로 알았는데 우리 아기는 왜 이렇게 예쁠까, 생각하며 좋아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기에게 황달이 있으니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머뭇머뭇하는 것이 석연치 않아 불안했는데, 세상에! 아기가 "다운증후군"인 것 같다며 염색체 검사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오진이겠지, 남편쪽이나 우리쪽 집안 모두 아무 이상없는데….
하지만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오진이 아니었다.

"정신지체를 초래하고 면역성이 없어 쉽게 병에 걸리고 60퍼센트가 심장병을 앓고 있으며,
평균수명이 40세, 발육이 늦고 근육이 약해 잘 걷지 못한다는 다운증후군."
임신책자에서 본, 30세 이상 고령 산모의 태아에게서 800대 1로 나타난다는 바로 그 병이 맞았다.
믿어지지 않았다.

11년 만의 임신으로 온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를 받은 지가 엊그제인데, 아기를 낳자마자 눈물 바다가 되고 말았다.
친정엄마는 “네가 힘을 내야 아기를 키울 수 있다”며 먹을 것을 입에 대주었지만
시도때도 없이 터지는 눈물 때문에 아무것도 목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두어 달 가까이 병원에 있다가 퇴원하여 친정에 머물렀다.
남편 역시 나만큼이나 속상할 터인데도 울기만 해선 안 되는 일이니 아기를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며 나를 다독였다.
우리는 이미 지어 놨던 아기 이름도 뭔가 재활의 의미를 부여해 주고 싶어 불교의 뜻을 빌어 "여진"으로 바꾸었다.
나도 자꾸만 밝은 마음을 가지려 애쓰니까 가슴 저미던 슬픔도 차츰 가라앉았고 아기가 새록새록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뒤 여진이는 갑자기 앓기 시작하더니 폐렴으로 40일이나 입원을 해야 했다.
안절부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어 폐렴이 겨우 나을 때쯤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심장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그때까지 아무 종교도 갖고 있지 않았던 남편과 나는 점점 약해지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교회 문을 두드렸고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한 달 만에 수술이 끝나고 퇴원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그때까지만 고생하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퇴원날 아침엔 하필 또 감기가 오는 바람에 퇴원을 못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났을 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장염에 걸리더니, 이어서 요로 감염까지….
그야말로 산 너머 겹겹이 산이었다.
내 평생 이렇게 힘든 나날이 또 있을까.

눈에 띄게 말라 가는 여진이를 보면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만 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가슴을 내려치는 일이 생겼다.
치사율 60퍼센트라는 곰팡이균에 감염된 것이다.
중환자실에 혼자 누워 있는 여진이는 아침저녁으로 30분밖에 면회가 되지 않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와 떨어져 차디찬 침대에서 고통스럽게 울어대는 여진이를 보며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 여진이, 아프지만 않게 해 주세요!”

그렇게 두 달 반 만에 여진이는 겨우 병원에서 나왔다.
집에 온 지 한 달이 지나도록 다행히 특별히 아프지 않았지만,
생후 5개월의 여진이는 보통아기의 생후 1, 2개월 아기들의 몸무게가 나갈 만큼 약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병원에 있던 시간이 더 많았으며 어른도 견디기 힘든 수술과 병원생활을 용케 견뎌 준 여진이는
요즘 딸랑거리는 방울소리에 귀기울이고 모빌을 보고 생긋생긋 웃기도 한다.
이런 천사 같은 여진이를 낳고 나는 왜 그토록 울었는지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작은 입으로 옹알이를 하는 여진이를 보면서 어쩜 내가 아는 것보다
우리 여진이가 할 줄 아는 게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 여진이를 키우면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아픔을 감수해야 할지를 떠올리면 벌써부터 가슴 한편이 아파온다.
하지만 정상인으로 자라서도 사람의 도리를 못 하고 사는 사람이 많은 이 세상,
남들보다 부족하고 말을 조금 못 하면 어떠랴.
천사처럼 예쁜 우리 여진이를 품에 안으며 세상 그 누구보다 건강하게 키우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