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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큰언니 보고 싶다
바가지 | 추천 (0) | 조회 (330)

2011-04-08 08:30

 
딸만 넷인 우리집은 내가 여덟 살 때 결손가정이 되었다.
나이 차가 많았던 위의 두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둘러 시집간 뒤 연락이 뜸했는데,
내가 5학년 되던 해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나서는 아예 연락이 끊어졌다.
어머니의 사랑이 늘 그리웠던 나는 반가운 한편, 친어머니를 잊은 아버지에게 섭섭함이 컸다.

몇 달 안 지나 새어머니는 아버지와 꼭 닮은 귀여운 아들을 낳았고, 그때부터 두 분은 셋째언니와 내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새어머니는 우리에게 밥상을 따로 차려 주시더니 아예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에게 살림을 모두 맡겼다.
게다가 언니를 산업체 야간고등학교에 보내고는,
언니가 잠도 못 자면서 피곤하게 일하고 공부해 벌어오는 돈을 고스란히 가져갔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착한 언니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하도 화가 나 새어머니에게 따졌다.
왜 언니가 벌어온 돈을 새어머니가 쓰며,
어릴 적부터 디자인 공부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언니를 왜 산업체학교에 보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 마침 외출했던 아버지가 들어오자 새어머니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앞뒤 사정도 들어보지 않고 무턱대고 나를 때리셨다.
셋째언니는 맞고 있는 나를 감싸안으며 아버지의 매를 대신 맞았다.

그날 밤 언니와 나는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언니의 한 달치 봉급을 들고 검은 비닐봉지 세 개에 대충 옷을 꾸려 가지고 대문을 나서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우리는 보증금 없이 월세 4만 5천 원짜리 방을 구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언니와 나는 혹시 아버지가 찾아와 용서를 빌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나갔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셋째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언니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고등학교를 마치게 된 나도 바로 취직을 했는데,
내 졸업식 날 언니는 “대학에 못 보내 줘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 뒤 5년 동안 언니와 나는 부지런히 직장에 다니면서 아껴 모은 돈으로 2천만 원짜리 전셋집을 얻었다.
이사간 첫날 우리는 밤새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참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셋째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큰언니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는데 큰언니가 우리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고 했다.
수년 동안 잊고 살았던 큰언니….
가끔 "두 언니가 우리 곁에 있어 주었으면 어땠을까?"하고 원망도 했지만 언니가 많이 보고 싶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큰언니를 집으로 초대했다.

일주일 뒤 큰언니가 찾아왔을 때 너무나 반가웠던 우리는 밤새도록 잠도 안 자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혼하고 일본에 갔다는 둘째언니 소식을 전하면서 큰언니는 울먹이며 자꾸만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큰언니가 집에 온 지 나흘째 되던 날,
큰언니는 출근하는 우리에게 김치를 담가 놓을 테니 일찍 들어오라며 문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큰언니가 마치 친어머니 같다"며 오랜만에 셋째언니가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치 도둑이 든 것처럼 집안의 가구가 모두 없어진 채 휑한 방에 셋째언니가 힘없이 주저앉아 있는 것이었다.
언니는 놀라지 말라며 주인 아주머니에게 들은 사정을 설명했다.
아버지가 위독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큰언니가 이틀 전부터 전세 보증금을 빼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동생들이 미안해하며 말을 못 한다기에 대신 말하는 거라고….

그 딱한 사정을 듣고 아주머니는 2천만 원을 찾아 큰언니에게 주었다고 했다.
게다가 큰언니는 우리들이 아버지 집에 들어갈 거라며 집 안에 있던 가전제품까지 모두 중고 시장에 팔아 버렸다.
셋째언니는 부랴부랴 큰언니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결번이었단다.

너무 어이가 없어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떻게 큰언니가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는지, 분하고 억울했다.
불쌍한 셋째언니…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 내렸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남은 짐을 쌌다.
그리고 다음날, 갖고 있던 75만 원을 톡톡 털어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했다.
부엌도 없고 주인 할머니의 방과는 문 하나로 나뉘어져 잔기침 소리까지 다 들리는 불편하고 초라한 단칸 사글세방으로….

셋째언니는 때때로 울먹이며 속상해하는 내게, 우리가 큰언니에게 도움을 준 거라고 생각하라며 나를 달랜다.
아무 말 못 하고 동생들의 돈을 그렇게 가져갈 수밖에 없었던 큰언니는 얼마나 미안하고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만큼이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아버지, 새어머니 그리고 큰언니도….
 
다만 이제껏 살아온 것처럼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미안함에 젖어 있을 엄마 같은 큰언니에게 말하고 싶다.
 
 
“언니, 우리 전화번호 그대로니까 꼭 전화 해 줄래? 큰언니 목소리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