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엄마 탓이야. 어떡해? 엄마가 내 인생 책임질 거야?”
난 엄마에게 마구마구 소리쳤다.
그때마다 엄마는 그저
“내가 죄인이다.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구나. 미안하다. 그렇게 싫다는 널 억지로 보냈으니 이 엄마를 원망해라”
하며 고개를 떨구셨다.
그러나 엄마를 향해 내뱉은 그 말이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란 걸 엄마는 아실까?
어릴 때부터 수줍음 많고 차분한 성격이었던 나는 별로 모난 데 없이 살아왔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연애 한번 변변하게 못하고 스물여섯을 막 넘기고 있던 내게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중매가 들어왔다.
중매 상대는 나보다 두 살이 많으며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보다도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다.
나이 먹도록 마땅한 혼처가 없는 딸 걱정에 노심초사하던 어머니는 조건이 꽤 괜찮은 선 자리를 소개받고는 부랴부랴 날을 잡았다.
드디어 나는 선을 봤고 세번째 만나는 날에 청혼을 받은 뒤 결혼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그런데 결혼준비로 자주 만나면서 그의 성격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급한 성격에 자기 중심적이었던 그는 온통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함부로 막말을 하고, 사람 많은 지하철역에서 내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갖고 있던 물건을 내던지기 일쑤였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도 비위가 상하면 나더러 당장 내리라 하고는 혼자 휑하니 가 버리기도 했다.
점점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나는 엄마에게 결혼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랬더니 엄마는 이미 청첩장까지 다 돌린 상태여서 친지들과 동네사람들 보기 난처할 뿐더러
그만한 혼처를 다시 구하기 힘들다며 오히려 내게 마음을 돌려 보라고 설득하셨다.
게다가 그 사람에게 전화해서는 날 다독여 보라고 지원까지 하셨다.
엄마가 그렇게까지 하시니 나도 별 도리가 없었다.
또 예로부터 어른 말 들어 손해볼 일 없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결국 등 떠밀리듯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아무리 애를 써도 어긋나기만 했다.
결혼한 뒤 남편은 더 심하게 나를 이유없이 구박했고 욕설과 폭력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렸다.
몸이 좋지 않으면 그것도 내가 잘 돌보지 못한 탓이고, 진급이 늦어지는 것 역시 내 탓이며,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접촉사고가 나도 내 탓이었다.
터무니없는 억지들로 견디기 힘든 날들이 계속됐다.
나는 더욱 더 말이 없어졌고 남편은 점점 자기 멋대로 행동했다.
생활비 30만 원을 주면서도 내게 낭비가 심하다고 잔소리를 했다.
또 “다른 집 여자들은 돈도 잘만 벌던데 넌 왜 그 모양이냐? 어디 가서 돈 좀 벌어 와라” 하면서 돈 벌어 오기를 강요했다.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던 나는 백화점 판매직 사원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남편은 힘들게 번 내 월급을 한푼도 남김없이 가져가 스키에다 콘도 회원권을 사는 등 날이 갈수록 낭비가 심해졌다.
게다가 외도에 폭행까지 하니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밤마다 눈물로 지새우기를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급기야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쇠약해졌고, 보다 못한 옆집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정신과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참으로 많이 고민했다.
마침내 어렵게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말했다.
물론
"서른이 넘은 나이에, 가진 것 하나 없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이혼녀라는 꼬리표보다는 차라리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부모님과 가족, 친구들 보기 미안하고 창피해서 어떡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참 많이 두려웠다.
이런 일쯤은 쉽게 넘길 수 있는 밝은 성격도 아니고 또 자격지심으로 더 힘들어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과의 생활은 차라리 죽기보다 더 힘들었다.
두 달 전 나는 친정으로 내려왔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눈물로 받아 주셨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착하고 순한 딸이 아니었다.
그 동안의 결혼생활로 인해 내게도 세상을 비꼬아 보는 버릇이 생겼다.
무슨 일이 생기면 스스로를 탓하기에 앞서 남을 탓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무섭게도 난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남편의 행동과 습관들을 무의식적으로 하나씩 따라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불행한 내 결혼도 모두 엄마 탓으로 돌리게 되었다.
그때 내게 왜 그렇게 결혼을 강요했는지, 엄마가 원망스럽다고, 차마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해 버렸다.
그런 내 모진 말들이 비수가 되어 엄마 가슴에 꽂히리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나 이제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답답하게만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라면 하라는 대로 바보같이 그냥 따르기만 하던 내 지난 모습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더불어 늘 내게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하시는 엄마께 꼭 잘사는 딸의 모습을 보여 드릴 것이다.
그래서 환하게 웃음짓는 엄마의 얼굴을 하루 빨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