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농의 셋째아들, 짧은 학력이었지만 부지런하고 검소한 내겐 희망이 있었다.
나이 서른, 제법 돈을 모았을 즈음 성공에 관심이 많던 나는 다니던 직조공장의 사장이 공장을 맡아 보겠냐고 권해 오자
형제들에게 돈을 빌려 공장을 인수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너무도 모르는 바보였다.
약삭빠른 사장이 잇속을 다 챙긴 뒤 껍데기만 남은 공장을 내게 떠맡긴 것이었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실의에 빠져 방황하던 어느 날 한 여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사촌 동생의 친구였던 그녀는 하늘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내 처지를 잘 알고, 어떤 고생도 각오하겠다는 그녀의 사랑에 감동해 우리는 결혼을 했다.
초라했지만 행복한 시작이었다.
부지런한 아내는 식구들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부모님 병 수발을 도맡았고, 퇴근하면 큰형님네 가게 일도 도왔다.
그런데 일년 뒤 첫딸을 낳고 장모님이 우리집 근처로 이사 오면서부터 아내는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왠지 쫓기는 사람처럼 늘 불안해했고 돈에 쪼들리는 눈치였다.
급기야는 적금과 보험까지 해약한 사실이 드러났다.
내가 펄펄 뛰며 다그치자 울면서 그 돈을 모두 친정엄마에게 가져다 주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장모님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었다.
장모님은 장인어른의 산업재해 보상금도 모두 헌금으로 바쳤고 치료를 받지 못한 장인은 불구가 되어 수용시설에 보내졌다.
또 처남의 대학 등록금마저 헌금해 버리자 이를 비관한 처남은 군대에 가 버렸으며,
지금까지도 아내에게 헌금을 강요해 온 것이다.
들을수록 기가 막혔다.
다음날 장모님과 크게 다툰 뒤, 아내에게도 친정 출입을 삼가라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처가와 의절한 뒤 우리 가정에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했지만, 아니었다.
장모님은 나를"악마" 라고 저주하면서 신도들을 동원해 아내에게 폭력까지 행사했다.
게다가 아내가 그 종교로 돌아오지 않으면 장모님을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끊임없이 헌금을 요구했다.
급기야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은 채 혼자 시달림 당하던 아내는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 요구를 들어주느라 여기저기에 엄청난 빚을 지고, 큰형님네 가겟돈까지 손을 댄 뒤였다.
그래도 장모님의 손길에서 벗어나기 어렵자 시댁 식구들에게 사죄의 유서를 남기고 죽음을 택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그러나 장례식장에 몰려온 장모와 그 신도들은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오히려 천국으로 갔으니 기뻐해야 한다고 박수를 쳤다.
당신 딸을 죽음으로 몰고도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냉혹한 장모님을 보자, 분노가 폭발한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쥐고 휘둘렀다.
누군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결국 아내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경찰서로 끌려갔다.
다행히 정상참작이 되어 풀려났지만 이 북새통에 어머니마저 충격으로 운명하셨다.
너무 기가 막히니 눈물조차 안 나왔다.
더욱이 아무것도 모른 채 장모님에게 배운 노래를 흥얼거리는 딸애를 보니 끔찍한 생각마저 들었다.
복수와 자살을 꿈꾸며 하루하루 망가져 가던 나는 제발 당신보다 앞서 가지 말라며 식음을 전폐한 아버지의 눈물 앞에 다시 일어서야 했다.
그러나 불행은 그치지 않았다.
발목을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던 딸애가 어느 날 뺑소니차에 치여 차디찬 시체로 돌아온 것이다.
아…, 정말 너무도 원통했다.
그때부터 뺑소니차를 잡으려고 현수막, 신문광고까지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가족들을 비롯하여 주위 사람들의 눈치는 점점 심해지고,
스스로도 미안함과 원통함, 분노 등 복잡한 감정들이 뒤죽박죽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포자기한 나는 세상을 원망하며 술과 싸움질로 심신이 황폐해져 갔다.
가지고 있던 돈은 다 날렸고 IMF라 취직도 쉽지 않고 형제들의 집도 마음이 편치 않아 결국 거리를 떠돌게 되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지" 한탄하며 지낸 노숙자 생활이 두어 달 지난 어느 날이었다.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서 한 끼 밥을 기다리는데 문득 눈물이 솟구쳤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들어가 실컷 울고 있자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이렇게 떠돌다 병들어 죽으라고 나으신 게 아닐 텐데…
구십이 다 된 아버지는,
미안해하며 죽어간 아내는,
또 딸애는…."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곧 세수를 하고 머리도 감았다.
그리고는 내 뒤치닥거리로 피해를 많이 보고 형수와 사이까지 나빠진 큰형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했다.
만날 면목은 없었지만 형은 수신자부담 전화로 내 위치를 알리자 즉시 달려와 주었다.
그리고 형의 도움으로 겨우 몸만 뉘일 수 있는 월세방을 구한 뒤 공공근로를 하면서 취업자리를 물색했다.
그리고 지금 마흔다섯,
지하 단칸방,
처자식 없는 홀아비,
청소부….
용역회사를 통해 들어온 이 건물 청소일은 정말로 박봉이다.
게다가 그 동안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에 몸이 자주 아프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평안하게 살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다.
내게 작은 소망이 있다면 어서 빨리 폐 끼친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고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해 예전처럼 어울려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