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집들이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그때 남편은 친구 신랑의 친한 거래처 사람이었다.
첫 만남에서 그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그의 적극적인 프로포즈에 나는 어렵지 않게 마음을 열게 되었지만,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다섯 살 된 아들이 있었던 것이다.
한 번 결혼에 실패한 그를 식구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용기를 내어 소개했지만 역시 식구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친구들까지 그를 소개시켜 준 친구를 비난하면서 결혼을 말렸다.
하지만 내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의 용기와 사랑으로 우리는 드디어 부부가 되었다.
결혼한 뒤 우리는 어떤 부부보다도 행복했다.
그 행복을 더욱 빛나게 해 준 그의 아이에게 나는 좋은 엄마가 되겠노라고 수백 번 다짐했다.
하지만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행복은 나에게서 떠나갔다.
너무도 자상하고 다정했던 남편이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 것이다.
어느 날 친정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을 챙겨 들고
저녁시간 전에 집에 오려고 서둘러 걷고 있는데 보따리가 너무 무거웠다.
겨우 집 근처 지하도에 다다랐을 때쯤 지나가던 신사분이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무거운 보따리를 나눠 들어 주셨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같이 지하도를 오르는데 순간 어디선가 남편이 나타나더니
난데없이 그 친절한 분에게 욕을 퍼부으며 멱살을 잡는 것이 아닌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얼른 남편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그 분도 화가 나서 언성을 높이며 남편과 다투다가 결국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다.
경찰서에서 합의를 보고 돌아와서도 우리는 또 한바탕 싸웠다.
나는 남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흥분한 남편은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세세하게 늘어놓았는데 이상하게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갑자기 소름이 확 끼쳤다.
내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을 정도로 잘해 주던 남편은 유독 내가 외출하는 것만은 싫어했는데
전부터 나를 죽 의심해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결혼에 실패한 이유도 바로 의처증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겉으로 드러내 놓고 나를 의심했다.
집 앞 슈퍼에 가느라 전화를 받지 않으면 난리가 났고,
볼일이 있어 화장을 하고 외출하는 날에는 듣기 민망한 이상한 말과 욕을 들어야 했다.
한번은 집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 친구를 집으로 불렀는데,
남편은 놀러 온 친구 앞에서 자신에 대해 무슨 욕을 했냐며 다그쳤다.
되도록 남편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나는 동창회나 백화점 쇼핑 같은 건 아예 포기했고 그저 남편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남편은 나날이 더 심해졌다.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물건 배달도 시키지 못하게 했으며 가게에 가더라도 남자 점원한테는 말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혹시 내 사진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밤새도록 인터넷 음란물 사진들을 뒤졌으며,
밤에 잠자리를 피하면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며 아기를 낳으라고 난리를 쳤다.
남편의 시달림을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피신하자 급기야 사정을 알게 된 부모님은 당장 이혼하라며 화를 내셨다.
그런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매달리다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남편이 친정에 찾아와 “내 마누라 어디에 숨겼냐”며 온갖 횡포를 부리는 통에 나는 남편 곁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운영하던 조그마한 사업체조차 나 몰라라 하던 남편은 결국 회사 문을 닫았고 그것이 나 때문이라며 또 나를 괴롭혔다.
정말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어느 날 한 친구네 집으로 도망을 갔다.
집에 있는 아이가 생각나 괴로웠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이혼을 굳게 결심한 뒤였다.
그러나 임신 4개월….
원하지 않던 아이가 내 몸에 생겨 버렸다. 고
민을 거듭하다 더 늦기 전에 수술하라는 주위의 권유에 마음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남편의 입원 소식이 들려 왔다.
혹시 나를 찾으려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남편은 정말로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것이다.
순간 잔인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나는 더욱 잔인해지리라 마음먹고 이혼하자는 말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린 남편이 핏기 없는 입술을 벌린 채 눈물만 흘리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쓰려 왔다.
결국 이혼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돌아 나와 시누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 하며 부둥켜안고 울었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와 울음을 참으며 어지러운 집안을 치우고 남편의 속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요즘 날마다 부른 배를 안고 병원을 찾아가면 아무 말 없는 남편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이제 겨우 일어설 수 있는 그가 어서 완쾌되어 예전의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그때가 되면 내게 고마움을 느끼고 나를 믿어 주겠지.
남편과 나, 씩씩한 큰아들 그리고 뱃속의 아이…,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할 수 있으리라.
"여보, 이젠 미안하다는 말 대신 꼭 다시 일어나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