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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가족들이 되찾아준 희망
바가지 | 추천 (0) | 조회 (309)

2011-04-18 07:31

 
유난히 당차고 돈 욕심이 많았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은 포기한 채 바로 백화점에 취직해 3~4년 동안 잘 다녔다.
그러나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너무 많은 걸 잃고 말았다.
다단계 판매에 빠져든 것이다.
MLM(Multi Level Marketing)이라 불리는 다단계 판매 방식은 환상과 꿈 그 자체였다.
그 이론에 의하면 당장 몇 달만 고생하면 큰돈을 만질 수 있을 듯했다.
나는 무슨 복권에나 당첨된 것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확실한 성공을 보장했고,
너무도 당당히 돈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두고 봐라`…
돈 많이 모아 집에 내려갈 테니"
 
라는 결심으로 사이비 종교에 빠져든 듯이 다단계에 푹 빠져 여기저기 빚을 내어 열심히 사업을 해 나갔다.

그러나 일은 내 생각처럼 척척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계속해서 끌어들이다 보니 피해자들이 속출하기 마련이었다.
결국 일년 반쯤 버티다가 시골집으로 내려왔는데, 자그마치 빚이 팔천만 원이나 되었다.
폐인이 되다시피한 나는 날마다 술과 눈물로 보냈다.

그 일로 제일 먼저 피해를 본 사람은 오빠였다.
제대하자마자 서울에 취직한 오빠는 3년 만기로 대출을 받아 원룸을 얻었는데,
그 대출받은 집 전세금을 갚아 나가는 오빠의 돈 이천만 원을 내가 그대로 날려 버린 것이다.
그때는 꼭 갚아 줄 수 있을 것 같아 자신만만하게 오빠에게 돈을 빌렸는데….
당장 집이 없어진 오빠는 여기저기 친구 집을 떠돌기 시작했고, 어느 때는 목욕탕에서, 비디오방에서 수없이 많은 밤을 보내야 했다.

내가 전화해 잘못했노라고, 꼭 갚아 주겠다고 울먹이면 오빠는
 
“난 괜찮아. 그보다는 네 주민등록증이라도 살려야 할 텐데…,
너 속상하다고 나쁜 생각하면 절대 안 돼”
 
라며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카드 값과 빚 독촉에 나는 결국 집을 뛰쳐나왔고
빚 독촉에 시달리다 지칠 대로 지친 아버지는 내 주민등록증을 말소시켜 버렸던 것이다.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취직도 못하고, 집에 있자니 식구들에게 죄스러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때마침 결혼한 친구가 산후조리 해 줄 사람을 구한다기에 몇 달 동안 그 친구 집에 머물렀는데,
그때의 정신적 고통은 말로 다할 수가 없다.
나로 인해 같은 신세가 된 수많은 사람들의 원망의 눈초리와 책임 추궁을 견딜 수가 없었다.
대인기피증, 심장 두근거림 증세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교제하게 되었는데,
진지하게 결혼 얘기가 나올 무렵 그는 내게 빚이 많다는 걸 알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니 연락을 끊었다.
너무도 속상했다.
"대체 돈이 뭐기에? 돈 앞에서는 사랑도 소용없구나. 술집에라도 다녀 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던 나는 신분보장이 느슨한 골프장에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손발이며 허리, 발목 등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리는 관절염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그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 즈음 집에서는 카드회사와 사채업자에게 진 빚을 부모님이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려 조금씩 갚아 나가고 있었다.
나의 더 깊은 방황과 좌절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부모님이 무슨 죄가 있기에….
효도는 못할망정 내 실수로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니, 그저 막막하고 죽고만 싶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빚이 정리되어 가자,
방황과 자책만 하며 살기보다 결혼이라도 해서 부모님 걱정을 덜어 드리자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내 처지를 알고 “이해할 수 있어. 젊은날 혈기로 그랬을 거야. 그만 방황하고 결혼하자”며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부모님은 크게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내 결혼을 도와주셨다.
빠듯한 형편이라 조촐하게 식만 올리게 되었는데 내 결혼식 전날, 우리 식구들은 한강물이 넘칠 만큼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문제는 혼인 신고였다.
말소된 내 주민등록증을 살려 전입 신고를 하고 났더니,
마지막 남은 최고장이 집으로 날아온 것이다.
행여 시댁식구들이 알게 되면 소박이라도 맞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때 동생이 적금 통장을 내밀었다.
7년 동안 미장원에서 온갖 잡일을 다하며 받은 박봉으로 다달이 몇 십만 원씩 모아 둔 8백만 원이었다.
올해는 그 적금을 타서 미용실을 꼭 차리겠노라며 절대 깨지 않았던 적금을 만기 몇 달 남겨 두고
이 못난 언니의 새 삶을 위해 마지막 빚 정리를 해 준 것이다.
울어서 코끝이 빨간데도 내겐 원망 한마디 않는 동생을 보고 얼마나 미안하던지….
가족들이 없었다면 내 방황과 절망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이제 나는 등본도 있고, 혼인신고도 했고, 은행거래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 가족은 나 때문에 진 빚을 갚기 위해 힘들게 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 결혼을 최고의 축복으로 생각한다.
이제야 두 다리 쭉 뻗고 주무신다는 부모님,
오빠와 동생 그리고 남편.
내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준 모두에게 한없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