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야! 진수야! 일어나야지. 학교 갈 시간이야.”
“엄마 5분만. 응? 딱 5분만 더.”
이불 속에 감춰진 두 아들의 무 속보다 뽀얀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가슴 가득 미소가 번집니다.
경수와 진수는 나의 아들입니다.
4년 전 그러니까 경수가 초등학교 1학년, 진수가 여섯 살 때 우린 엄마와 아들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지금의 남편은 이혼을 하고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 보려고 억새풀보다 더 억세게 노력했으나,
갑자기 병마가 찾아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을 고아원에 맡겨야 했고, 남편은 자기 삶을 비관하며 술에만 빠져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솜털도 채 마르지 않은 어린 나이에 아픈 세상을 알아야 했습니다.
“니 엄마는 니 낳다가 죽은 기라. 복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술 한잔에 취기가 오르면 아버지가 수없이 되뇌던 그 말이 가슴속에 칼날이 되어 지금도 마음을 찌릅니다.
얼마 뒤 머리를 반달처럼 빗어 넘긴 새엄마와 남동생이 왔습니다.
새엄마는 마음이 넉넉했고, 내 긴 머리를 참빗으로 빗어 곱게 땋아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열두 살 되던 해 아버지는 마음씨 좋은 새엄마를 두고 먼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새엄마는 아버지 장례를 치른 뒤 옷고름 가득 눈물을 훔치시며 동생과 함께 떠났습니다.
다음날 옆집 할머니 손에 붙들려 간 곳은 선생님 집이라고 했는데 그 집 사람들은 제게 무척 모질었습니다.
설거지며 온갖 빨래는 모두 나의 몫이었습니다.
고무장갑이 없던 시절이라 겨울이면 손은 거북등처럼 갈라졌고,
여름에는 종일 어린아이를 업고 있느라 등이 땀띠로 짓무를 정도였습니다.
"정녕 이 길밖에 없는 것일까?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길이 있을 텐데."
나 자신을 생각하고 돌아보기까지 4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성탄절날,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옷가지만 몇 개 챙겨 나와 무작정 찾아간 곳이 서울 구로동에 있는 봉제공장이었습니다.
언젠가 그곳에서 일하며 공부하는 언니들이 많다는 걸 방송에서 들었거든요.
봉제공장에서 일을 해 돈을 버는 것도 좋았지만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제겐 더없이 소중한 하루하루였습니다.
백 촉짜리 전구 밑에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고 있던 어느 날,
“힘들 텐데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하며 한 청년이 우유와 빵 하나를 건넸습니다.
씩 웃는 그의 이는 박 속처럼 눈이 시렸습니다.
그 일을 시작으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에겐 사랑이 내려앉았고 서로 힘든 삶을 위로하며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일을 끝내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길을 걷는 것도, 출근하기 위해 김치 한 조각으로 급히 먹는 아침도 마냥 기뻤습니다.
함께 산 지 1년이 채 안 되어 알밤송이 같은 아들을 낳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지요.
그런데 행복이란 단어에 물기가 채 마르기 전 얼굴도 모르는 두 여자가 들이닥쳤습니다.
“이런 망할 년. 어디다 꼬리를 쳐!”
집 안을 온통 뒤흔들고 포대기에 싸인 아이마저 데리고 휑하니 사라진 뒤 제게는 유부남을 가로챘다는 간통죄만 남아 있었습니다.
알고 저지른 죄도 아닌데, 나에게 꽂히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제겐 너무 괴로웠습니다.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 죄인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싫었고,
그때 받은 충격으로 입원한 정신병원에서도 그 꼬리표는 늘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6년 뒤에야 전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어느 한식집 주방일을 시작했지요.
그곳에서 술로 세월을 보내는 빨간 코의 왜소해 보이는 경수아빠를 만난 것입니다.
나의 설움과 그의 설움을 밤새워 얘기하는 것이 편했고, 그보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것이 지난날의 속죄이고 또한 이름도 모르는 빼앗긴 아들에 대한 보답일 것 같았습니다.
멀리 경상도에 있는 고아원으로 두 아이를 데리러 가던 날은 바람이 몹시 부는 겨울이었습니다.
아이들 앞에 섰지만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준비했던 인사말은 입 밖에 내지도 못하고
어릴 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눈물만 흘리고 서 있는데, 아이들이 먼저 밝게 인사를 해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엄마! 저는 경수고요, 동생은 진수예요.”
전 그제야 “그래, 엄마야. 우리 이제부터 행복하게 살아 보자” 하며 두 아이를 가슴에 꼭 품었습니다.
아이들을 태운 차가 미끄러지듯 우리의 보금자리로 향하는 동안 전 가만히 두 손 모아 기도했습니다.
“험한 세상 징검다리가 되어 이 아이들을 꼭 지킬 수 있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