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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15년을 돌아온 먼 길
바가지 | 추천 (0) | 조회 (292)

2011-05-02 09:36


부모님은 우리 칠남매를 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큰오빠와는 17년, 큰언니는 15년 차이가 날 정도로 어렸던 나는 슬픔이 무언지도 몰랐다.
형제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일터로 나갔다.
중학교 때는 혼자 자취를 했는데, 그나마 작은오빠가 내 방 보증금을 빼 달아나는 바람에 자퇴를 하고는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공장에서는 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월급이 나오니 좋았다.
하지만 푸른 작업복을 볼 때마다 우울했다.
평생 이 작업복을 못 벗는 건 아닐까 두렵기까지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교복 입은 학생들이 부러웠고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몰래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친구들의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 학력을 속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부하는 걸 들킬까 봐 늘 조마조마했다.
기숙사 도서실에서도 책 한 장 마음 놓고 들여다볼 수 없었다.
 밤늦게 혼자 남아 공부하다가도 발소리가 나면 얼른 책을 덮었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방 식구들이 모두 외출하고 혼자 남게 되어 불도 끄고 햇빛을 전등 삼아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친구가 방문을 두드리며 날 불렀다.
“성미야. 뭐해? 너 방에 있지? 성미야? 있는 것 같았는데 대답이 없네.”
나는 숨죽이고 있었다.
그때 하필 방 언니가 돌아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의아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친구에게 “잤어…” 하며 둘러댔지만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내 사정을 조금 눈치 챈 친구는 나에게 진실한 친구가 되자며 다가왔다.
그 친구에게 마음을 열 것인지 자존심을 지킬 것인지 수없이 망설이던 나는 결국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돌아섰다.
열여덟 살, 사회에서 처음 만난 착하고 좋은 친구를 나는 그렇게 보내 버렸다.

숨어서 하는 공부가 잘 될 리 없었고, 차츰 학원에 빠지는 날이 늘어 갔다.
결국 공부를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공부하는 걸 알고 있던 언니오빠들에게는 자존심에 합격했다고 둘러댔다.
그리고는 학력을 속여 직장을 옮겼다.
나중에 돈 많이 모아 내 방이 생기면 그때 꼭 공부를 다시 시작하리라 다짐하며….
그렇게 어느새 스물일곱이 되었지만 결혼도 꿈꿀 수 없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다.
게다가 IMF까지 터져 더 힘겹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리가 살살 아파 왔다.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누워 꼼짝도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다 통증이 발목까지 내려오는가 싶더니 급기야 내 두 다리는 마비되어 버렸다.
척추에 생긴 종양 때문이었다.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은 병원비로 다 써 버렸다.

"하나님 나 좀 죽여 주세요. 이런 모습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요."
밤이 오면 차라리 자다가 죽었으면 하는 기대를 품었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다시 시작된 생에 또 눈물 흘리며 하루를 보냈다.

그 눈물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내가 쓰러진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 형제들마저 내게서 발길을 끊어 버렸던 것이다.
그때 작은언니가 손을 내밀었다.
밥 먹여 주고, 세수며 양치, 빨래 등 해도 해도 언니 일은 끝이 없었고, 나는 날마다 울기만 했다.
그런 내 모습에 언니는 점점 힘들어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기를 바라면서 날마다 이렇게 울다가 10년, 2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울면서 그 세월을 다 보냈으니 나도 불행하고, 곁에 있는 언니는 또 얼마나 괴로울까?"
언니에게 미안했다.
나 때문에 네 식구가 방 하나에서 좁게 지냈다.
어린 조카들과 형부에게도 한없이 미안했다.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울지 않겠다고.
생각을 바꾸자 얼굴에 혈색이 돌았고 다리에도 변화가 왔다.
평생 꼼짝하지 않을 것 같던 발가락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한쪽 다리도 들 수 있게 되었다.
차츰 건강도 더 나아지고 더 좋은 날들이 올 것만 같았다.

1년 뒤 건강이 더 나아지자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포기했던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부끄러웠지만 지난날의 거짓말을 언니에게 다 털어놓고 검정고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4월, 중학교 학력 인정 합격증을 받았고, 그 뒤 넉달 만에 고등학교 과정 합격증까지 가슴에 안았다.
8개월이면 되는 이 합격증을 받으려고 15년 그 먼 길을 돌아왔단 말인가.
나는 가슴이 울컥했다. 장애인이 되지 않았으면 아직까지 나는 학력을 속이며 무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었을 텐데
장애라는 위기가 내려 준 또 한 번의 기회였던 셈이다.

내년에는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 공부를 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을 돕고 기쁨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이제 다시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