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가난한 집 오 남매의 넷째딸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께 또 하나의 짐에 불과했다.
어린 날을 돌아보면 내 기억의 사진첩에는 얼룩만 가득할 뿐이다.
네 살 무렵 어느 날 엄마아빠가 싸우셨는데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아버지의 거친 행동을 피해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던 내가 발을 헛디뎌
수제비를 끓이려고 연탄아궁이에 올려놓은 펄펄 끓는 냄비 위로 넘어진 것이다.
가슴 아래 부분이 냄비 속에 빠져 버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하지만 병원은 고사하고 약 살 돈조차 없었던 부모님은 급한 대로 알코올로 데인 곳을 닦아 주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셨다.
얼마 뒤 큰이모가 집에 오셨다가 안타까운 마음에 나를 당분간 맡겠다며 데려가셨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더한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길일 줄이야.
사촌언니와 오빠들은 내 머리도 빗겨 주고 서로 업으려고 다투다시피 하며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 주었다.
그렇게 3년여 동안 난 이모댁 막내처럼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는 장에 가시고 사촌언니도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때였다.
집에는 고등학생인 둘째오빠와 일곱 살이던 나 단둘뿐이었는데, 평소 무뚝뚝하던 사촌오빠가 이상스레 다정하게 굴었다.
그러다 억센 힘으로 날 덮쳐 왔다.
일곱 살 어린 나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몰랐고,
그저 오빠가 이모한테 말하면 가만 안 두겠다며 윽박지르는 것이 무서워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 악몽 같은 일은 내가 학교 갈 나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서야 끝이 났다.
마음에까지 큰 생채기를 얻은 나는 꼬깃꼬깃 구겨진 채 말없는 소녀가 되어 갔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좀체 친구를 사귈 줄 몰랐고 공부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린 날의 그 일이 시간이 지날수록 내 가슴을 후벼 팠던 것이다.
나를 이모 집으로 보낸 어머니아버지가 미웠고, 세상이 싫었다.
나는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기어이 실행에 옮기려던 그날 새벽, 엄마가 연탄가스에 중독돼 의식을 잃으셨다.
그토록 원망스러웠던 엄마지만, 영영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다.
"엄마, 제발 돌아오세요.
이 어리석은 딸이 가려고 했던 길을 왜 엄마가 대신 가려고 하세요.
다시는 몹쓸 생각 안 할 테니 제발 깨어나세요…."
다행히 엄마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셨다.
몇 해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 역시 나처럼 내세울 것 없는 학력에 서른이 다 된 나이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척 성실했으며, 그의 사랑은 평생 녹을 것 같지 않던 내 마음을 차츰 열리게 했다.
그러나 분홍빛 행복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문득문득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올라 사소한 일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남편도 점점 짜증을 내며 변해 갔다.
내 몸의 흉터를 트집 잡으며 “너 때문에 재수 없어서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인다”고 빈정거리기 예사였다.
급기야 애들에게까지 손찌검을 했다.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던져진 듯했다.
우울증에 빠져 집안일도 아이들도 돌보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를 살았을까,
아이들이 방 한구석에서 어린 날의 나처럼 잔뜩 웅크린 채 겁에 질려 떨고 있는 걸 보았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들을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
“엄마, 우리랑 살자. 우리가 커서 엄마 행복하게 해 줄게.”
아이들이 오히려 날 위로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도 뭔가 느꼈는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함부로 말하지 않고, 다시 나를 처음처럼 사랑하고 아껴 주었다.
나 또한 시도 때도 없이 울컥울컥 치밀던 옛 기억의 상처들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끔 집안 모임에서 너무도 태연하게 나를 대하는 사촌오빠를 볼 때면 식은땀이 흐르고 소름이 돋는다.
모임에서 돌아오면 늘 며칠씩 몸살을 앓곤 했다.
그런데 자꾸만 내 안에서 어떤 강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보, 언제까지 옛일에 붙들려 괴로워할 거야?
그럴수록 상처만 더 깊어져.
니 잘못이 아니니 이제 그만 잊어.
다 지난 일이야.
그리고 현실에 당당해져!"
그렇다.
지금 내게는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런 아이들과 소중한 남편이 있다.
모두 잊고 용서해야 한다.
아직은 습관처럼 찾아오는 우울증으로 힘들지만 노력할 것이다.
먼 훗날 내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 들려줄 날을 기대하면서.
“내 소중한 천사들아, 엄마는 절망 앞에 무릎 꿇지 않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