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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키다리 아저씨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바가지 | 추천 (0) | 조회 (339)

2011-05-23 15:34

 
5년 만에 처음으로 우체국에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간단한 일이 내게는 왜 그토록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가능한지.
7개월 전 새로 시작한 문구사에 돌아와 통장을 조심스레 펼쳐 봅니다.

폐가 나빠 움직임이 적은 직종을 찾다가 전당포를 열었고 그 일이 잘되어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일에 대한 회의가 들더군요.
그 당시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데이트레이더"라는 증권 전문직이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시작했지요.
컴퓨터에 자료만 깔면 주식을 바로 사고팔 수 있었으니까요.

천만 원으로 시작한 일이 하루 백만 원의 수익을 내면서 전당포 자금까지 주식에 쏟아 부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수익보다 손실 폭이 커지더니 원금마저 고스란히 날아갔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참으로 터무니없습니다.
그 많은 돈을 잃고도 증권에 대한 학습료라고 위안하게 되더군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원금만 찾으면 다시는 안 한다"고 다짐하며 집을 담보로 사채를 얻고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돈을 꾸었습니다.

2억에 달하는 빚에 이자가 붙어 결국은 3년 전, 전당포와 아파트까지 넘어가고 카드도 펑크 나 버렸습니다.
밤낮으로 빚 독촉 전화가 빗발치고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 아내의 마음은 처절했지요.
게다가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몇 십만 원이라도 수중에 들어오면 모니터 앞을 지키고 있는 남편이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가스와 전화가 끊기고 주변 사람들과 형제들도 등을 돌렸습니다.
인터넷도 끊겨 하는 수 없이 직장을 알아보는데, 신용불량자라는 딱지가 따라다녀 받아 주는 곳이 없더군요.
아내와 아이들의 눈을 마주볼 수가 없었습니다.
불안에 떠는 그 눈빛을….

무작정 집을 나와 강원도, 충청도… 발 닿는 대로 다니며 막노동을 했습니다.
손이 부르트고 냉방에서 침낭을 둘러쓰고 한겨울을 지냈습니다.
일어나리라, 다시 일어나리라, 이를 악물었지만 워낙 큰 빚더미인지라 이자 갚는 일만도 벅찼습니다.
한번은 집에 잠시 들렀더니 아내는 돈 벌러 나가고, 아들 녀석도 등록금을 벌기 위해 주차장에 일하러 가고 없었습니다.
텅 빈 집이 어찌나 절망스럽던지, 아무 희망도 없는 듯해 울컥했습니다.

그러던 작년 겨울 성탄절날, 아내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막내인 나를 늘 안쓰러워하며 걱정하던 큰형님이 뇌일혈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형님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형제들이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거둬 가 모두 원상태로 돌려주셨지요.
우리 형제들은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그렇게 형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혈육의 뜨거운 정을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누나들이 이 못난 막내를 다시 받아 주셨지요.
비록 사글셋집이지만 부모님을 모셔 오고 형님이 하시던 문구사를 맡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문구사지만 온 힘을 쏟아 운영했습니다.
그동안 신용불량자들을 구제해 주는 한마음 배드뱅크로 대부 신청이 받아들여져 공공 기관에서 개인 신용이 회복되었습니다.
나는 빚을 졌던 친구와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이자만도 평생 갚기 힘든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고 원금이라도 갚겠다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믿었던 사람들에게 다시 쌓아야 할 신용.
앞으로도 20 년은 빚을 갚기 위해 애써야겠지요.
당분간은 휴일도, 놀이도, 외식도 없겠지만 잃어버린 사람들, 절친했던 사람들에게 믿음을 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얼마 전, 드디어 내 이름으로 문구사의 사업자 등록증도 냈습니다.
아흔을 앞둔 부모님 앞에 통장과 사업자등록증을 내놓으며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시며 가시덩굴 같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습니다.
“잘했다. 이제 다시 시작해 봐라. 정말 고맙다.”

요즘 나는 온종일 문구사에서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오늘은 긴 장마 끝의 햇살 덕분인지 아이들 목소리가 한층 드높습니다.
“아저씨~” 떼로 몰려드는 아이들.
185센티미터나 되는 나를 꼬마 손님들은 키다리 아저씨라 부릅니다.
키다리 아저씨의 옛이야기는 이제 접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