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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게 옳은 길이겠죠
바가지 | 추천 (0) | 조회 (268)

2011-05-28 08:19

 
쉰을 바라보던 2년 전 가을, 짧지 않은 결혼 생활을 끝냈습니다.
3분의 1로 줄어든 집으로 이사한 뒤 일자리를 얻으러 다니는데 왜 그리 바람이 차던지….
시린 가슴이 더욱 휑해진 나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늦가을에 이혼하는 건 정말 못할 짓이구나."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
평소 언니라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일을 만들어 버린 남편.
두 사람의 배신과 그동안 까마득히 모르고 살았던 내 우매함에 대한 자책이 겹쳐 앓을 대로 앓았습니다.
그러나 내 앞에서 열심히 그 언니 편만 드는 남편을 보고 믿음이 산산조각 나 이혼을 결심하던 날도,
아이 둘과 덩그러니 남았을 때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강해야 아이들도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요.

이혼 2개월 만에 애들 아빠는 재혼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벌써?” 하며 놀란 아들은 나를 위로하려는 듯 얼굴색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상대는 그 언니가 아니라 시누이가 중매해서 만난 새로운 여자라더군요.
시댁에서는 사춘기 애들에게 두 번이나 충격을 줄 수 있으니 재혼 사실을 나중에 알리라고 했지만
매정한 그는 자식 때문에 자기 인생 희생할 생각은 없다면서 애들에게 직접 통보했습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애들에게 용돈을 주는 대신 내건 조건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애들이 재혼한 여자와 함께 만나서, 그 여자에게 잘 보이고 비위를 맞추라는 것이었습니다.

적반하장이었습니다.
자식을 배려하지 않는 아빠의 말에 아이들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요.
아이들은 아빠와 만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애들 아빠는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미안하다며 눈물 흘리는 날이 늘어 갔고
결국 아이들은 아빠를 만났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더군요.
애들 아빠는 재혼 직후 큰 병을 얻었고, 1년 동안 회사를 휴직했답니다.
또 처음에 애들 아빠와 바람난 그 언니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언니가 믿었던 사위감도 딸을 버렸다더군요.
결국 이렇게 될 것을….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침묵은 신이 준 선물이라는 것, 격한 감정을 삭이며 터득한 지혜였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와 한 달에 한 번씩 만났습니다.
병으로 훌쩍 늙어 버린 제 아빠가 미안하다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는 동안
아이들의 분노는 차츰 연민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것이 천륜이겠지요.

어느덧 2년이 흘렀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더니 내 마음의 키가 자라고 뿌리는 조금씩 깊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멀어졌던 친정엄마에게도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내 결혼생활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경제적 도움을 약속하셨던 엄마는 막상 이혼을 하자
행여 내가 짐이 될까 봐 온갖 거짓말로 나를 멀리했습니다.
믿고 의지했던 엄마였기에 그 상처는 애들 아빠가 준 상처보다 더 깊게 파고들었지만,
그것도 시간에 묻혀 서서히 옅어져 갔습니다.

얼마 전 애들 아빠가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지금의 부인과 이혼할 테니 아이들과 다시 함께 살자더군요.
이제는 어떤 말에도 놀라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며 어느 길이 더 옳은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상생의 길을 말입니다.
"또 이혼하면 그만큼 죄가 하나 더 늘게 되니 제발 아이들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현실에 충실하라고, 그
 여자에게도 잘해 주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래요.
이제는 서로 가는 길이 다른 사람들이라 믿습니다.
지금의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사는 것이 가장 옳은 길이고 서로를 위하는 길이겠지요.
아이들에게도 어쩌다 시댁 행사에서 만나는 아빠의 부인에게 잘하라고 타이릅니다.
아이들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려는 뜻이지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마음에 힘든 노동이고 또 무거운 짐이라는 걸 깨달았기에….

아이들도 안정이 되고 그 여자도 애들에게 더 잘하려 애쓰는 듯합니다.
그냥 이대로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 겁니다.
지나간 날 나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모자람도 많고 못해 준 것도 많았으니 아쉬움이란 이름으로 추억 삼고 살겠다고요.
그것이 모두가 잘살기를 바라는 제 기도입니다.
또한 제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