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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나는 아내의 행복을 바랄 뿐입니다
바가지 | 추천 (0) | 조회 (261)

2011-05-31 08:17

 
유복자로 태어난 나는 공고를 다니다가 수원의 염색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뛰어든 사회생활이 힘겨울 때 나를 도와준 동료가 있었습니다.
계란 값이 싼 구멍가게를 알려 주고 전철을 타고 처음 동대문을 구경시켜 준 사람도 그녀였습니다.

공장 일이 손에 익을 무렵, 군대에 간 나는 허리를 다쳐 의병 제대를 했습니다.
허리 디스크로 고통받는 나를 그녀는 사골을 고아 먹이며 보살펴 주었습니다.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청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시골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함께 벌어서 보내자고 했지만 그녀는 나의 사정을 잘 안다며 부담 주기 싫다더군요.
그 순간에도 그녀는 내 걱정뿐이었습니다.

몇 달 뒤 그녀가 울면서 찾아왔습니다.
부모님이 그녀가 달마다 보내 준 돈을 차곡차곡 모아 땅을 사려다 사기를 당해, 그 충격으로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것입니다.
며칠 동안 말없이 차가운 방에 누워 있는 그녀 곁을 지켰습니다.
예전에 그녀가 나에게 해 준 것처럼요.
기운을 차린 그녀에게 또 한 번 청혼했습니다.
결혼식도 생략한 우리는 반지하 셋방에서 초라한 신혼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살림을 내 자취방으로 옮기던 날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습니다.
다리미, 옷걸이, 냄비, 밥그릇… 서로의 살림이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작업장에서 받은 빵과 우유를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 서로 챙겨 주며 우리는 가난했지만 행복했습니다.

아내가 임신을 하자 공장을 그만두게 하고 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으로 보냈습니다.
얼마 뒤 나도 휴가를 얻어 집에 내려갔는데, 집 주인아주머니는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고 했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가니 아내는 응급실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당뇨 때문에 수술도 못한 어머니는 보름 뒤 꼼짝도 못하는 몸으로 퇴원했습니다.

병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 모습이 얼마나 미워 보이던지 그만 “시어머니가 이 지경이 됐는데, 잠이 오냐?”며 뺨을 때렸습니다.
아내는 울면서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 뒤 돌아와 어머니의 팔 다리를 주물렀습니다.
어머니를 간병하겠다는 아내에게 임신한 몸으로 힘들지 않겠냐고 걱정하자 아내가 이렇게 답하는 게 아닙니까!
“아기는 어머님 건강해지시면 그때 낳아도 늦지 않아요.”
아! 우리 아기가 유산된 것입니다.
내가 어머니 걱정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닐 때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 아내는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했습니다.
유산하고 몸이 아파 누워 있는 줄도 모르고….

그때부터 아내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2시간이었습니다.
욕창에 걸리지 않게 밤이나 낮이나 어머니의 몸을 2시간마다 바꿔 줘야 하고, 팔 다리를 주물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루에도 너댓 번씩 코를 통한 고무관에 미음을 넣어 주고, 이틀에 한 번 관장을 해 드렸습니다.
아내는 힘들지 않다며 늘 웃음을 지었지만 푸석하고 야윈 얼굴을 볼 때면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내 가슴은 멍들었습니다.

아내의 정성 덕분인지 두 번의 봄이 지나자 어머니는 차츰 혼자 힘으로 앉고 대소변도 가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어머니가 아프셨지만 우리 가족은 행복했습니다.
우리 세 사람,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미소만이 가득한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행복은 아내의 오빠가 찾아오면서 깨졌습니다.
효심 깊은 아내는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에 괴로웠던지 긴 편지를 남겨 놓고 오빠를 따라 친정으로 가 버렸습니다.
나와 말다툼 한 번 없었는데….
아내의 고향을 찾아갔지만 아내는 못 만나고 형님에게서 이제 그만 끝내 달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나는 어떤 변명도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돌아온 나를 보고 어머니는 당신 때문이라며 우셨습니다.
돌이켜 보니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늦게나마 내 진심이 아내에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나에게 산 정상에 오른 것 같은 기쁨과 행복, 희망을 보여 준 당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내가 바라는 건 오직 당신의 행복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