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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멀리서 그녀의 행복을 빕니다
바가지 | 추천 (0) | 조회 (271)

2011-06-03 07:26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열차에 몸을 싣기까지 참 많이 고민했다.
병환으로 누워 계시는 할머니와 중풍을 앓는 아버지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실지,
도박에 빠져 집 나간 어머니가 혹시나 돌아오는 건 아닌지….
하지만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자신의 공장에서 함께 일해 보자는 친구의 권유를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월세 보증금을 마련해 친구에게 미리 부쳤다.
녀석은 고맙게도 집 계약부터 이사까지 모든 것을 도와주었다.

첫 출근한 날, 공장에는 경리 여직원 한 명이 앉아 있을 뿐 다른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친구는 내게 다른 직원들은 모두 지방 출장으로 자리를 비웠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몇 대씩 들어오는 트럭을 수리하다 보면 온몸이 기름 때로 범벅이었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 친구에게 화도 났지만 직장에 집까지 마련해 준 고마움에 묵묵히 일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다른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고, 친구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하루는 공장으로 험상궂게 생긴 사람들과 거래처 사람들이 찾아와 친구를 찾으며 행패를 부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경리직원에게 물으니 망설이다 하는 말이 친구가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공장도 남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직원들도 모두 그만둔 지 오래라고.

"세상에 이럴 수가…."

배신감에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문을 들어서니 아버지가 툇마루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며 새벽까지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몸도 성하지 않은데 말까지 잃은 아버지 마음은 오죽할까…."
그런 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살아야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며칠 동안 넋 놓고 앉아 있는데 경리직원이 찾아왔다.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위로하던 그녀는 그날 이후 내게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고아원에서 자라 세상 의지할 곳 없다는 그녀에게 내 어깨를 내주었고, 그녀는 날마다 우리 집에 들러 할머니와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그녀의 정성에 친구에 대한 배신감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다시 공장에 출근해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자 친구가 나타났다.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는 모습에 화가 났지만 공장을 다시 돌리는 게 우선이었기에 친구를 설득했다.
하지만 녀석은 오히려 내게 화를 냈다.

“은혜도 모르는 거지 같은 놈….”
참을 수 없는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날렸다.

밖에 나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들어오는데 그녀와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그새 눈 맞았냐? 너랑 나랑 어떤 사이인지 저 자식도 알아?”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고 숨이 막혔다.

그 뒤로 그녀의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그녀는 친구에게 마음만은 주지 않았다며 용서를 빌었지만 분노로 이성을 잃은 나는 그녀의 가녀린 몸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집에 들러 할머니와 아버지를 모시던 그녀는 어느 순간 발길을 끊었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지만 날이 갈수록 그녀의 빈자리는 커져만 갔다.

며칠 뒤 나는 또 한 번 무너지고 말았다.
녀석은 내가 준 2년 치 월세 보증금을 1년만 치렀던 것이다.
절망스러운 마음에 약을 들고 산에 올랐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툇마루에 앉아 떨고 계신 아버지가 희미하게 보였다.
"아, 성치 못한 할머니와 아버지도 잊은 채 나 혼자 세상을 등지려 했구나!"
부끄러워 눈물이 쏟아졌다.

5개월 뒤, 다시 시작해 보자는 각오로 동네 정비소에 일자리를 구했다.
적잖은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처음에는 창피했지만 다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지난 시간들은 분명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혹독한 홍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랜 수소문 끝에 찾은 그녀….
죄책감이 앞서 다가설 수 없지만 멀리서 행복을 빌어주는 것으로 내 못난 사랑을 대신하련다.